뜻하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옮기기 전, 어렵게 시간을 맞춰 다녀온 2박 3일의 춘천 여행.

잠시 강가 숲길을 걷다가 뜻하지 않게 만난 숲속의 햇살, 그 미소.

여러모로 번잡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러 다녀온 여행의 마지막은 길찾는교회 성찬예배.

오늘 내게 한 조각의 빵이 되고 한 모금의 잔이 되어준 길찾는교회 식구들. 이들은 뜻하지 않게 만난 햇살의 미소와 같은 존재다.

어느 한 사람도 내 뜻대로 나의 빵과 잔이 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거나 익숙한 모습과 삶으로 나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되지 않는다. 모든 빵과 잔이 그 독특한 향과 맛과 느낌을 갖고 있는 것처럼, 길찾는교회 식구들 모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독특한 삶과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렇게 내 뜻과 소원대로 맛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가오거나, 내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크고 작은 '신들'이 아니다.

마치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내 생각과 경험보다 크고 넓은 삶과 방식으로 '서로' 만나 '서로의' 빵과 잔이 된다. 그렇게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사는 존재, 즉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동행하는 하나의 교회가 된다. 기도한다는 건 함께 싸운다는 것이다. 동행한다는 건 서로에게 먹을 것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교회를 이룬 우리는, 내 뜻과 소원대로 맛보는 빵과 잔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그 삶과 방식, 그것 그대로 먹는 빵과 잔이다. 때론 거칠고 텁텁하다. 심지어 먹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존재도 있다.

그러나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게 먹을 것이 되는 서로는, 숲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햇살의 미소다. 뜻하지 않게 만나기에 준비해야만 한다. 생각지도 않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수행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우리들의 하느님'께로 이끄는 '수행의 디딤돌'이 되어주는 뜻하지 않은 존재들. 그런 빵과 잔이다.

지난 몇 주 동안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빵과 잔의 비밀'은 우리들의 뜻과 소원과는 너무 다르다. 우리와 계속 부딪힌다. 그렇게 우리를 이끈다. 우리의 한계로. 그 한계를 마주하며 넘어서는 그 수행의 일상으로. 그 뜻하지 않고 원하지 않은 만남으로. 그것이 '복음'이다.

숲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햇살의 미소가 그러하듯이, 그 모든 것은 내가 나를 넘어서게 할 것이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게 할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뜻하지 않은 햇살의 미소가 되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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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23일, 연중 21주일.

* 1독서: 여호 24:1-2, 14-18 / 2독서: 에페 6:10-20 / 복음: 요한 6:5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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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8/24 21:19 2015/08/2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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