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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는교회에서는 설교 대신에 말씀 나눔 갈무리로 대신하다보니, 긴 설교문을 쓸 일이 없다.

그저 간단한 메모가 전부.

물론 설교보다는 말씀 나눔 갈무리 준비가 훨씬 더 고되지만 ㅎㅎ

그래도 가끔 이런 저런 이유로 설교문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전에 내게 설교를 가르쳐준 한 목사님께서는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하셨다.

첫째, 비판받지 않을 완벽한 설교문 같은 건 없으니 괜한 욕심 갖지 말아라.

둘째,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애정어린 비판을 받아야 좀 더 제대로 된 설교가 될 수 있다.

셋째, 먼저 너 자신에게 적용될 수 없는 그럴 듯한 말들만 늘어놓을 거면 아예 입을 닫아라.


지금도 그 가르침은 마음 깊이 남아 있다.


내일 12월 27일, 사도 성.요한 축일을 맞이해 써놓은 설교문 초안을 나눠본다.

"자캐오, 너부터 이렇게 살아라!" 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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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7일(금) / 사도 성.요한 /
출애 33:7-11 / 시편 117 / 1요한 1:1-9 / 요한 21:19-25

“참사랑은 마주하는 것입니다.”

기쁜 성탄절을 맞이해서 잠시 따뜻해졌던 날씨가 다시 추워졌습니다. 우리 기쁜 성탄을 맞이한 기념으로 추위로 꽁꽁 언 서로의 손을 녹여줘볼까요? 먼저 내 손을 비벼서 따뜻하게 한 다음에 서로의 손을 마주잡으며 이렇게 인사합시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이제 우리, 서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며 인사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사랑받았다고 전해지는 사도 성.요한의 축일입니다. 켈트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사도 성.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안겨 주님의 심장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랑받는 제자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주님 가까이에서 주님과 함께 하며 궂은 일 좋은 일을 다 겪은 제자라고 할 수 있죠.

교회 전통에 따르면 사도 성.요한은 오늘 성서인 "요한의 첫째 편지"와 "요한의 복음서"를 쓴 저자라고 전해집니다. 요한이 직접 쓰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이 두 성서는 주님의 제자인 '요한의 공동체'에 속한 제자들이 쓴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는 그 시작이 비슷합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1장 1절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복음서 1장 1절입니다.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그러니까 비슷하게 시작하는 성서 둘을 하나로 이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던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신데, 주의 제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가장 처음 읽었던 출애굽기의 말씀에도 이와 비슷한 증언이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 앞부분입니다. "야훼께서는 마치 친구끼리 말을 주고 받듯이 얼굴을 마주 대시고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니, 여러분은 이런 체험이 있으십니까? 친구를 대하듯이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눠본 체험.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그가 하신 사건들을 목격하며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한 체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에 '사건과 이야기의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책' 즉 '경전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실상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사건과 이야기들'로 가득한 '증언집'이 우리의 경전입니다. 그러니 그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체험하고 증언한 증인과 증언들이, 우리 그리스도교를 이루고 있는 핵심입니다.

헌데 직접 체험하거나, 누군가 체험한 것을 전해듣지 않은 증인과 증언이 있나요? 그리스도교는 정경 66권과 외경들을 사서삼경 외우듯이 줄줄 암기하고 있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성서의 내용들을 법률이나 도덕률처럼 여겨 그 내용을 지켜 행한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성서에 담긴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직접이든 간접이든 체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사가 전해주는 그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건과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인'인 것입니다. 그처럼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더라도 성서의 사건과 이야기들을 체험하거나 목격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 성서의 사건과 이야기들을 오늘 내 삶에서 체험하거나 목격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늘 성서의 증언들을 체험하든지 목격하든지 합니다. 친구를 대하듯이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그가 하신 사건들을 목격하며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쯤 말하면 다들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아니 저 분이, 이번 성탄에 무슨 일이 있었나? 갑자기 신비주의자나 은사주의자가 됐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오늘 시편의 증언처럼 '우리에게 진실되고 뜨거운 야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뿐입니다. 오늘의 2독서인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좇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는, 우리가 어둠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며 '진리를 좇아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빛 가운데서' 살 때에 우리가 하느님과 사귀는 체험과 목격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빛 가운데 사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성령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그것은 '우리에게 진실되고 뜨거운 사랑'이신 하느님의 속성을 이해하면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진실되고 뜨거운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는 자의 하느님이오, 슬픈 자의 하느님이며, 없는 자와 천한 자, 잡힌 자, 약한 자, 눈먼 자, 병든 자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주님의 명령처럼 사시면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 하느님과 사귀는 체험을 하실 겁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 기준에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가십시오. 그리고 그를 주님대하듯이 섬기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40)

여러분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을 주님 대하듯이 섬기면, 여러분은 하느님을 마주하고 사귀는 체험을 얻게 되실 겁니다. 그 사람을 어루만지시면, 하느님을 어루만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지체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참사랑은 마주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저 거리와 우리 곁에서 목소리를 잃고 보잘것없어진 사람들 곁으로 달려가십시오. 그곳에서 하느님을 마주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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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3/12/27 01:05 2013/12/2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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