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가 아니듯.

우연한 기회에 아주 오래 전에 알던 지인의 글을 봤다.

재밌는 건, 그 글을 읽는 나의 반응.

어느새 오래 전에 알던 그 사람의 이미지와 지금 읽는 그 사람의 글을 겹쳐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다 저렇다 머리 속과 표정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고 있었다. 전에 비해서 꽤 유명해진 사람. 그래서 내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도 간혹 회자되는 사람.

그 사람의 글을 읽는 나의 반응을 스스로 눈치채고 웃기다고 표현한 건, 내가 눈치챈 내 반응의 내용 때문이다.

이미 그 사람과 나는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사이다. 간혹 사람들이 물어보면, "아.. 전에 잠깐 알던 사람이예요."라는 표현 외에는 더 이상의 인연은 없는 그런 사이.

이 말은 더 이상 그 사람과 나는 '아무 사이' 아니란 거다. 전에 몇 년 알고 지낸거야 그때 일이고, 무엇보다 그때 그 사람은 지금의 그 사람이 아니다. 나만 해도 그 사람과 어울리던 시절의 내가 아니지 않던가. 지금의 나는 그 시절 입에 달고 다니던 얘기, 아는 척하던 사상이나 포기할 수 없다던 입장에서 벗어나거나 달라진 게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왜 나에게 아직도 '과거의 그 사람'이어야만 할까.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지만, 나만 해도 그 사람을 알던 시절에 원수처럼 지내던 엄니하고 지금은 서로 애교(?)를 부릴 만큼 편안하게 회복되었고 가까워졌다. 이렇듯 내 일상에 큰 영향을 주던 조건이 크게 바뀌었으니, 그때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헌데 그 사람은?

당연히 그도 많은 게 바뀌어 있을 거다. 그가 요즘 떠들고 다닐 얘기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가며 익히고 있을 사상도, 그때처럼 지금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큰소리치는 주장도, 내가 알던 그 시절의 그와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오래 전에 알던 그의 잔상에 얽매여, 지금 그의 글을 읽으며 이렇다 저렇다 쉽게 재단하고 있었던 거다. 나도 그 때의 내가 아니듯, 그도 그때의 그가 아닐텐 데..

참 우습다.

결국 오래 전 잠깐 그와 어울리던 그 짧은 인연으로, 오늘의 그에 대해 아는 척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재단하는 이유는 간단한 것 같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과의 '지난 인연'을 말하고 싶거나, 무의식에라도 그와 영향력을 주고받고 싶은 거다.

더 이상 그는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내가 오래 전 그와 어울리던 내가 아니듯이. 무엇보다 더 이상 그는 나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다. 어떤 영향을 줄 수도 받을 필요도 없는 사이다.

세상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지만, 이렇게 우스운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내가 기억하고픈 방식으로, 내가 조작하여 붙들고 있는 방식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다.

이제 다시 한 번 그의 글을 정독해 봐야 겠다. 그리고 이제는 많이 달라진 그의 생각과 마주해야 겠다. 그렇게 그를 축복하고, 이제는 나와 '아무 사이도 아닌' 그를 다시 만나야 겠다. 딱 지금의 글로 읽히는 그만큼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듯이, 오늘의 그도 어제의 그는 아니다. 물론 당신이 알던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는 아니다. 당신이 조금 알고 있는 나도 나의 전부가 아니다. 그저 조금의 영향을 줄 뿐. 딱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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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10/04 16:40 2014/10/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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