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운동권, 줄여서 '고.운'이라고 불리던 시절에 만난 최병천 선배. 전에도 한 번 언급했듯이, 지금은 민병두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 중인 형.

가끔 글을 읽다가 보면 비슷한 지점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물론 삶의 영역이 꽤 다르니,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게 더 많겠지만 ^.^;;; 아래 글도 그 중에 하나.


병천 선배의 글과 프레시안 기사를 읽고, 세 가지를 메모한다.


첫째, '새로운 이야기'는 거의 없다. 다만 '달라진 이야기'는 가능하다.

그러니 '동네 골목길', 그러나 단절되지 않는 '다른 동네 골목길'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동네 골목길'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서 선배들이 해왔던 운동과는 '달라진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 기반하지 못하고 '이슈'에 대응하느라 바쁘다면, '어떠한 운동과 구성원'도 '누적'되지 못한 채 결국 소진되어 버리기 쉽다.


둘째, '평론의 정치'와 '실천의 정치'과의 관계는, 신학과 교회의 현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만 '분석 및 비판과 담론 형성'을 해주는 '평론(이론)의 정치'를 하는 신학자들, '활동 및 조직과 세력 형성'을 하는 '실천(현장)의 정치'를 하는 교회(사목자와 신자).이 둘이 서로한테, '평론과 실천' 둘 다 완벽하게 병행하라는 지나친 '요구'를 하는 건 재고해봐야 한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한테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대체 언제까지 '네가 말하는 이론적 엄밀성을 실천해 봐라!'거나, '네가 현장에서 이루고 있는 건, 사실 이런 저런 한계 밖에 없는, 겨우 그런 것일 뿐이다.'는 식으로 서로를 깎아 내리느라 힘 뺄 건가.

물론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서 '더 냉철하게 말하고 듣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또한 '안전한 관계와 공간'이라고 느껴지는 곳에서 이뤄지는 게 서로한테 도움이 된다.


셋째, 그리고 제발, '진보'나 '개혁'을 지향하는 '이론가'나 '현장 운동가'들에게 '어느 정도의 욕망'이 작동한다는 건 인정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프라이버시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어느 정도의 욕망'은 더 지켜져야 한다고 인정했으면 좋겠다.

설령 그들이 '신학자'나 '사목자'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욕망'이 작동한다는 걸.

왜냐고? 당신은 '도인 = 진보, 개혁 진영'과 '욕망의 화신 = 보수 진영'이라는 도식이 '2014년, 우리의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는 걸 알지 않나? 이 시대가 아직도 '조선 시대'인가?

2014년의 진보와 보수가, 성리학 이념과 대의 명분을 위해 무엇이든 바칠 수 있는 '사림',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변신할 수 있는 '훈구'의 또 다른 현신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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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최병천 선배가 장석준 부대표의 칼럼을 읽고 코멘트한 내용이다.


< 정치에서 '주체'의 중요성 - ‘평론의 정치’는 절대로 ‘실천의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 >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의 칼럼이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사람 중 한명이다. 사물을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날카로움이 있다. 장석준 부대표 칼럼의 핵심 내용은 <87년 선거제도>는 양당제를 강제하기에, ‘대표성’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87년 선거체제>를 뛰어넘는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2014년 버전의 CA 운동인 셈이다. 단언컨대, 그런 개헌은 앞으로도 우리가 상상가능한 시간안에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제도’에 선행하는 것은 ‘주체’이다. ‘특정한 정치주체’가 ‘특정한 정치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대중들은 열심히 ‘정치제도’를 공부해서, 어떤 제도가 가장 좋은지를 선택하는 과정을 밟지 않는다. 그것은 장석준 부대표가 사례로 들었던 브라질이 되었건, 스웨덴 등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정치주체>가 '먼저' 존재하고, <그 세력>이 주장하는 제도를 대중들은 지지하는 것이다.

장석준 부대표가 지적하는 87년 선거제도는 왜 만들어졌는가? 87년 일부 운동권에서 존재하던 CA운동(제헌의회 운동)은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 운동의 <주체들>에 대한 대중적 평가의 문제이다.

대중들은 김영삼-김대중을 지지했던 것이고, 대중들은 CA(제헌의회 그룹)을 지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2004년 총선 때부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이것은 2002년 12월 대선에서 출마했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즉, 국민들은 ‘정치주체’를 보고, ‘제도’를 지지했던 셈이다. 저들 민중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한번 기회를 주자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는 향후 몇 년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쉽지 않다고 전망하는 편이다. 그 이유도 동일하다. <정치주체> 때문이다. 17대 국회(2004년~2008년)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들어왔던 민주노동당 출신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의정활동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회찬-심상정-강기갑-단병호 등이 그러했다.

그런데, 2012년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논란, 경기동부연합의 종북 논란, 이석기 논란 등을 거치면서 진보정당이라는 <정치 주체>는 대중적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이 되었다. ‘탄압’때문이 아니라, ‘선거제도’ 때문이 아니라 <정치주체> 스스로의 잘못된 노선-이념-실천-행태 때문에 <신뢰>를 잃은 것이다.

‘정치 주체’는 ‘제도’에 선행한다. 제도는, <국민적 신뢰>를 받는 <정치세력>이 갖는 힘의 크기만큼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평론의 정치>가 절대로 <실천의 정치(=세력형성의 정치)>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87년 체제를 뛰어넘는 선거제도 개혁은 언제 가능한가? 그것은 오직 <87년 체제를 뛰어넘는 ‘정치주체’>가 등장한 이후에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그러한 정치세력은 존재하는가?

민주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구 진보신당)?.. 나는 아직, 없다고 본다.

그래서 실천적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적 신뢰를 축적하는 ‘정치주체’의 형성> 그 자체이다. 문제의 본질은 다시 ‘대안적 주체 형성’이며, 그것을 창출하기 위한 ‘대안적 실천’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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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링크 글은 가장 처음 글인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의 칼럼이다.

[장석준 칼럼] 우리의 6월을 넘어서자, <변호인>은 절대로 '박근혜'를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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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8 02:07 2014/01/18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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