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7일, 연중 20주일.

특별한 행사나 프로그램이 없는 주일. 정기적으로 성찬예배에 참여하시던 몇몇 분들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은 참여가 어렵겠다고.

언제나처럼 "네. 별 일 없으신거죠?"라는 간단한 답을 드리곤, '오늘은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예배드리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교회로 향했다.

주일 오후 4시의 성공회 서울주교좌교회는 조금 여유로운 모습. '비도 오고.. 휴가의 끝무렵이기도 해서 그런가..'라는 생각 잠깐.

며칠 전부터 붙들고 고민하던 오늘의 복음 말씀은 정말 갈무리하기 어려운 본문 중 하나였다. 가나안 여인의 간청을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매몰차게(?) 거절하시는 대목.

'예수님도 참..'

그 냥반 성격도 참 그렇다는 둥 혼자서 별별 상상을 다하다가,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묵상을 해봐도, 과했던 것 같은 예수님의 반응에 마음은 복잡하고 불편해진다. 그래서 좋은 갈무리가 자리잡지 않았다.

그러나 성찬예배는 시작되고, 언제나처럼 1독서, 2독서 낭독. 그리고 복음을 듣기 위한 노래를 부른 후에 복음 말씀 낭독. 이제 종소리에 맞춰 5분간 묵상. 묵상이 끝난 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모래시계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한 사람 두 사람 이어지는 말씀 나눔.

15분간의 말씀 나눔이 끝난 뒤, 복잡하고 불편했던 마음은 정리되고 두 가지로 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첫째로 1독서, 요셉의 이야기. 2독서, 로마서의 이야기. 그리고 마태오 복음서에 나온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결국 '자비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란 것.

형제들을 향한 눈물젖은 요셉의 절절한 이야기든,

유대인들의 불순종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복음의 놀라움이든,

제자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연기(?)이든, 아니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한걸음 더 나아가셨든 간에,

그 이야기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자비와 화해'를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선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째로 성서의 이야기는 '만남'을 통해 새로운 복음의 은총으로 나아간다는 것. 길찾는교회의 식구들도 각자가 가진 한계 그대로, 낯선 서로를 만나 부딪히고 울고 웃는 가운데, 이전까지 맛보지 못하던 '복음의 은총'을 새롭게 만나는 과정을 경험해 왔다.

오늘 복음서가 전하고 있는 것처럼 가나안 여인이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애원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오늘 복음 말씀은 결국,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낯선 만남을 통해 확장되는 복음의 은총을 전해주고 있다.


2014년 8월 17일. 내 예상과는 달리, 평소보다 많은 32명의 성찬예배 참여자들. 그리고 다음주부터 한동안 못 보는, 오랜 길찾는교회 식구라고 부를 수 있는 2명과 함께 드리는 마지막 예배.

우리는 그렇게 서로 손을 얹고 축복하며 기도했다. 낯선 만남으로 새로운 복음의 은총으로 안내해 준 서로를 축복했다. 간절한 서로의 기도 제목이 가장 유익한대로 채워주시는 주님의 응답을 얻어, 반 년 뒤, 일년 뒤,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만나기를 바라며.


---------

# 1독서, 창세 45:1-15 / 2독서, 로마 11:1-2상, 29-32 / 복음, 11:1-2상, 29-32.

#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령을 보내시어 죄의 억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하느님의 참 자녀로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시는 영광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4/08/18 02:34 2014/08/18 02:34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481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606 : 607 : 608 : 609 : 610 : 611 : 612 : 613 : 614 : ... 1001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357954
Today:
104
Yesterday:
548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