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이야기다.

내게 있어 신학은 이야기다.

그렇기에 신학이 다르다는 건 이야기 방식이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상대의 이야기를 오래 경청한 뒤 되묻고 답하는 힘겨운 수고 없이, 쉽게 상대를 '다르다'거나 '틀리다'고 단정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학이란 서로의 이야기를 오래 경청한 뒤에 되묻고 답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거다. 그리고 그가 그 이야기를 어찌 살려고 애쓰는지 함께 살아가는 거다.

내가 상대를 이야기 상대로 여기지 않는 극단적 태도와 주장을 가진 이들을 상대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이들은 신학이 아니라 스스로 '전능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때론 힘겨워도, 내가 보수적인 신학부터 해체적 신학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되묻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신이 나와 이야기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직까지 나를 이야기 상대로 여긴다면, 거기에는 신의 숨결을 식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신은 우리에게 '가능성'이자 '희망'이니, 우리가 서로 '전부'라고 우쭐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 우리 곁에 우리의 모습으로 와 계신 '신'을 닮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의 안팎에는 이미 신의 숨결이 와 계신다. 충분할 만큼 충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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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9/19 00:22 2014/09/1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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