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2014년 2월 13일. 오후 6시 반. 퇴근길.

경주하듯 이리 저리 뛰는 사람들 사이에 휨쓸려, 지하철 입구로 빨려 들어가듯이 빠르게 걸어간다. 잰걸음으로 이리저리 부딪히고, 그때마다 짜증난 표정은 늘어가지만, 애써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간다.

문득, 멈춰선다.

왜지... 왜 이리 급하게 살아야지...


한참을 멈춰 묻는다.

내 심장에게 묻는다. 내 마음에게 묻는다.


괜찮니? 힘들진 않아??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애써 참는다.

그래. 내 템포에 맞춰 살자. 내 리듬으로. 그렇게 하느님도 내 곁에 함께 살아주는 사람들도 느끼며 살자.

그렇게 살면 게으르다 하겠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 자기 템포에 맞춰 살 수 없는 사람들 생각하면 이기적인 선택 아니냐고 하겠지. 지금도 너무 느슨하게 살면서, 책상 앞에서 대우(?) 받으며 사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아직 고생 덜 해서 그렇다고 하겠지.

뭐, 그럼 떠나야지. 최대한 하느님이 내게 허락하신 템포와 리듬에 맞춰 살 수 있게 해야지.


나도 그리 살려고 애쓰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겐 하느님이 허락하신 템포와 리듬으로 살라고 하면 그 분들은 뭐라 할까.

진정한 영성이란 분주한 중에도 '평정'과 '하느님의 호흡'에 머무는 거라는 이들도 있던데. 개뿔!!! 몸과 정신이 분주한데 그게 가능하다고? 당신은 몸 따로 영혼 따로 일지 모르겠는데, 난 아냐.

내가 아는 영성은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아. 몸이 분주하면 영혼도 분주해지지. 영혼이 지치고 아프면 몸과 마음도 지치고 아파.

그러니 평정과 하느님의 호흡 안에서 머무는 삶을 살려면, 내 일상 속에서 내 몸이 그리 살아야 해.


멈출래. 느리게 느리게, 그렇게 호흡하며 분주함과 반대로 살래.

뭐, 게으르다고, 이기적이라고, 모범이 되어야 할 사제가, 신자들의 귀한 헌금으로 빌어 먹고 사는 사제가 더 부지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비난해도 좋아. 육체 노동하거나 너무 가난해서 선택 없는 노동에 내몰리는 수많은 사람들 언급하며 '배부른 고민'하고 있다고, 더 고생해야 정신 차린다고 협박(?)해도 좋아.

난 그렇게 하느님 앞에서, 내 곁에 살아주는 길벗들 앞에서 하느님이 허락하신 내 템포와 리듬으로 어울려 살래. 언저리에서, 전복과 변혁의 영성이 가능하다고 떠들어 온 게 이 때문이니깐.

냅둬. 나 그렇게 살래.


* 덧붙임. 자캐오, 겉으로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슴다. 너무 걱정들 마소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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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2/13 21:59 2014/02/1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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