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들기는 기울기다.

길벗들과 길찾는교회를 시작하게 되면서, ‘편드시는 하느님’을 ‘편드는 신앙’에 대해 수 없이 떠들었다. 정말 스스로도 질릴 정도로 반복해서 강조하고 강조했다.

대림 4주일. 말씀 나눔 시간에 갈무리를 하면서 먹먹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말도 안 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마리아에게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임신 사실을 전하러 왔다가, 살해 당할 수도 있는 위험 앞에 놓인 ‘미혼모’ 마리아를 마주한 천사. 어디선가 말 없이 ‘마리아의 고백어린 비장한 노래’를 지켜보고 있었을, 그 천사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고나 할까..

내가 없었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을 거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삶이 ‘좁은 길’에 ‘응답’하는 가운데 판판이 깨지고 힘들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길벗들과 길찾는교회라는 우산 밑에서 보낸 지난 3년. 나를 포함해서 길벗들의 삶은 점점 더 힘들고 어려워졌다.

그러나 우리들의 입술과 삶에서 증언되는 이야기들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사회적 소수자’임을 ‘자각’하며 ‘연대’하는 교회”가 되어갔다.

하지만 그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삶은 선명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기에, 그럴수록 우리의 길은 점점 더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입술과 삶으로 증언할 때마다, ‘너희는 매순간 그렇게 살고 있냐’고 묻는 입과 눈들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말씀 나눔의 갈무리를 하다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편들기는 ‘가르기’가 아니라 ‘기울기’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눠 갈라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느 편으로 기울어 사느냐, 어느 편으로 기울어 있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종종 선명하게 나누고 싶어한다. 그리고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요? 어느 편에 설 건가요?”

그러나 나는 다르게 묻는다. 하느님의 나라와 현실세계는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는 어디로 기울어 있나요?”

그 ‘기울기’는 더 나중된 것, 권세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 배고프고 자비가 간절한 사람들에게로, 더 낮고 연약한 곳으로 기울어 가는 것이다. 어둔 밤을 밝히는 작은 빛들처럼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작은 빛은 더욱 더 반짝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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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12/22 16:01 2015/12/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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