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고 나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엄하게 대하신다는 아버지의 압도적인(?) 폭력이 있을 때마다, 교회는 내게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여러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홀로 세 아들을 키우시던 엄니의 긴긴 넋두리가 시작되거나 집에 쌀이 떨어졌을 때마다, 교회는 내게 '둥지'가 되어 주었다.

집에서 뛰어가면 10분 내에 도착하는 교회 지하 예배실에는, 늘 동네 신자들의 눈물과 깊은 한숨 어린 기도가 가득했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간이든 새벽이든, 교회 그 예배실은 내게 '쉴 곳'이 되어 주었다.

중고딩 시절, 밤 늦은 시간이든 새벽이든, 감당하기 어려운 폭력이나 칼날처럼 후비어 파던 넋두리를 피해 '피난처와 둥지'가 되어주던 교회. 그로 인해, 어느새 나는 '사목자'가 되라는 교회 어른들의 기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성공회 신부'라는 이름으로 사목자가 되어 살고 있지만, 동네에서 가난한 이들의 '피난처와 둥지'가 되어주는 교회를 찾기 힘들어진다는 말만 들려온다. 그런 지향을 가진 사목자들은 교회에서 '탈락'하거나 스스로 '떠나' 버린다는 말만 들린다.

그나마 '복지 기관'이나 '사회 선교 현장'에서 그 끈질긴 투쟁을 포기하고 있지 않는 사목자들은, '복지사'와 '사목자'라는 이중 정체성 가운데 복지사 이상일 수 없는 한계에 한숨만 깊어 간단다.

매 주일, 길찾는교회 식구들과 함께 드리는 성찬 예배 중 '곁에 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 시간에, '지역 사회 선교 + 선교적 교회'에 대한 도전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는 건 그 때문이다.

내 어릴 적 '피난처와 둥지'가 되어 주었던 교회가 다시 돌아올리는 없다. 그건 그 시대 속에서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교회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회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 '세상을 섬기기 위해 보냄 받은 존재'임을 깨닫도록 안내하는 길을 가야 한다. 점점 더 극한 '벼랑'으로 떠밀려가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의 '피난처와 둥지'로 다시 재구성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나와 우리 모두, 당장은 그 '벼랑 끝'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지만, 우리도 언제든 그 '벼랑 끝'으로 떠밀려 버릴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무력함을 증폭시킨다. 그 '벼랑 끝'이 네 얘기가 안되려면 더 납작 엎드려서 맘몬과 그의 사람들에게 더 순종하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동네에 자리 잡은 '열린 형태의 선교적 교회'이자, '저항과 변혁의 영성'에 근거한 '나눔의집 같은 사회 선교 현장'이 함께 있는 '교회'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동네 사람들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피난처와 둥지'가 되어주려고 하는 교회 하나쯤 말이다.

* 세 모녀의 죽음... 그 사회적 타살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두 손 모아, 다시 기도한다. '잘' 가라고... 미안하다고...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고 싸워 보겠다고... 그대들이 미안한 게 아니라고...

* 지금은 관계가 많이 회복된 우리 엄니. 가장 어려운 시절, 우리 엄니의 넋두리 가운데 하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어려운 거 티 내지 말며,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한창 활동할, 그러나 아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던 두 딸의 어머니. 그녀의 메모가 내 명치 끝에 밟히는 이유가 그 때문인가 싶다.

* 샬롬... 샬람... 피스... 이 밤, 주님의 피눈물 나는 간절한 평화를 빕니다. 두 손 모아,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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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3/01 01:08 2014/03/0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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