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내가 '개별 사람'에게 크게 실망하지 않는 건, 개별 사람에 대한 기대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가 작으면 실망도 작은 법.

이상적 이론 또는 개인의 상상 속 삶에서야 별 게 다 가능하겠으나, 현실 속 삶이란 특정 관계나 조직이라는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리랜서나 자영업, 심지어 봉쇄 수도자들조차도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나 조직 안에서 생존하지 않던가.

쉽게 말해서 오롯이 '개별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건 그 한계가 분명하단 거다.

물론 나는 그 때문에 '공동체'라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선을 긋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느슨하든 촘촘하든 '공동체'라 불리든 '네트워크'라 불리든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그들은 서로와 안팎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이처럼 서로한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데, 소위 '안전 거리'라는 걸 설정한다고 해서 '나 외의 사람들'이 '항상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 안전 거리를 지키란 법은 없다. 그러니 계속 서로 영향을 줄 테고, 그 영향을 주고 받는 방법이 훈련되어 있거나 세련되지 않다면, 둘 이상 모여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상처의 창고'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따로 또 같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어차피 당신과 나는 '따로'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다만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더불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 한다' 또는 '거기에다 더하여'란 표현. 하나의 존재에 또 하나의 존재가 더하여져 같이 함을 나타내는 표현들.

내가 '개별 사람'에 대한 기대는 작아도, '사람'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 사람'과 '이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공동체 따윈 없다. 그저 '사람'이기에 이룰 수 있는 공동체가 가능할 뿐이다. 우리 각자가 '우리들의 하느님'을 따르려는 존재이기에, '하느님의 숨결'이 깃들어 이어져 있는 존재들이기에 '지금 가능한 공동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란 존재들이 스치거나 만나 더불어 머물러 있는 '공동체'에서 기대하는 나의 '최대치'는 바로 '우리들의 하느님'과 '따로 또 같이'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의 공동체가 실체를 이뤄 할 수 있는 만큼만 더불어 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이상적 이론이나 개인의 상상에서나 가능한 그런 일들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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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11/19 03:44 2014/11/19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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