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울어진 세상에서 편드는 신앙으로 살기.

교회는 말하지 않고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분노의 숫자」


한국에 아직 출간되지 않은 한 권의 책이 던져주는 화두로 인해, 지난 몇 달동안 여러 언론 지면과 온라인이 뜨거웠다. 부의 불평등에 대한 실증분석으로 21세기에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이란 책이 그 주인공이다.


꽤 어렵고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는 책임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 조만간 번역되어 나올거라는 얘기가 떠도는 책. 그 책이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부의 불평등’이란 주제는 오랫동안 인류가 씨름해온 숙제다.


이는 기독교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씨름해왔다. 오죽했으면 복음주의자인 짐 월리스가 성서에서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부분을 찾아 오려냈더니, 2천 군데가 넘어 성서가 너덜너덜해졌다는 일화까지 있지 않던가. 그만큼 부의 불평등 문제는 인류와 기독교의 오랜 화두였다. 그래서 그 ‘부의 불평등’에 대해 깊이있고 의미있게 다루고 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그토록 이 책에 관심을 갖는 것일게다.


그런데 이 유명한 책을 읽기 전에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지난 4월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나온 「분노의 숫자: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라는 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월호 참사 전후로 우리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에 대한 자성과 고민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가뜩이나 게토화되어가던 한국 개신교가 늦게나마 위기를 인식하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는 듯 싶다. 그 가운데 복음주의권에서는 ‘공공 신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에큐메니컬 쪽에서는 ‘기독교와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세상에서 기독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몸부림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이런 시기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그저 담론 제시나 방향성만을 제시하는 우리 논의를 한걸음 뛰어 넘어 구체적인 통계와 분석에 기반한 방향 제시의 모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고의 장점은 ‘생애 주기 중심’으로 구성하여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세대가 모여 있는 교회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깊을수록, 이 책은 꼭 필요한 좋은 참고자료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알잖아’라는 수준에 머물 수도 있는 추상적 처방을 뛰어 넘으면서도, 결코 난해하거나 먼 나라 이야기같지도 않다. 신학적 이야기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사회학적 용어와 개념’이 가득한 책 앞에서 길을 잃기 쉽다. 또 분명 우리가 나아가야할 해외의 좋은 사례들을 제시한 책 앞에서 절망감을 느낄 때도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도 사회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각 주제마다 한 쪽씩 할애하여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하여 제시한다. 낯설거나 어려운 용어는 각 주제가 끝날 때마다 간략히 정리해 준다.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니, 통계와 숫자 그리고 분석으로 이뤄진 374쪽 분량의 책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쉽게 읽힌다. 그렇게 끄덕거리며 읽다 보면, 어느새 2014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이웃과 교회 신자들의 삶을 한걸음 더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해외 사례를 제시할 때에도, 우리 현실에 대한 분명한 분석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러저러하니 해외의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반복하지 말자’거나, ‘이러저러하니 해외의 이런 사례를 고민하여 우리가 가야할 길에 적용해 보자’는 식으로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이렇게 하나 둘씩 귀기울여 듣다보면, ‘고속 압축 성장’을 마치 ‘하님의 뜻’처럼 여기고 이를 위한 ‘병영국가와 사회’를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던 우리에게도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니, 계속 이렇게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 부족으로 여기던 우리가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게 된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이 책은 한 마디로 이렇게 정리한다.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고 살기를 중단하는 사회.”(373쪽) 이런 사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도덕적, 종교적 훈계나 가르침만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일까?


책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 25~44세 기혼 남녀들이 희망하는 자녀의 수는 평균 2.01명”으로 인구를 현상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인 ‘대체출산율’과 비슷하다고 한다(23쪽). 그런데 실제 출산율은 2000년대 이후 평균 1.2명 정도를 유지하는 데 그치고 있단다(22쪽). 희망하는 자녀의 수와 실제 출산율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 건, ‘3포 세대’라고 회자되는 2014년 대한민국 청장년 세대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 돈이 없으니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다. 그러니 ‘3포 세대’는 돈에 목숨을 건다. 돈이 최고의 가치이자 삶의 목표가 되어간다. 신자라고 다를까? 그런데 교회는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동조한다. ‘돈을 벌어, 더 많이 벌어, 주님의 선한 일에 쓰라’고 선포한다. 심지어 이를 위한 ‘자기개발’을 강단에서 적극적으로 선포하고 전파한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 신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고백하는 신자나 목회자들이라면 필독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교회 현장에서 신자들의 일상과 생애에 대해 조금이라도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다가가고픈 마음과 열정이 있는 신학도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과 신자들 그리고 우리. 그 가운데 지나치게 기울어져 불쑥 솟아오른 승자들의 땅과 무리에 들어가는 것이 축복이라고 선포하며 가르치는 수많은 교회들. 이 책은 왜 이것이 ‘거짓 복음’인지,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폭로하며 안내해 준다.


이토록 훌륭한 책에도 부족한 점은 있다. 대안과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서 매우 구체적이지는 않다. 이에 대해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위한 기초 자료”(373쪽)라고 말해준다. 이 책, 이 기초 자료는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분노의 숫자」라는 제목처럼 나를 분노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한숨과 탄식으로 다짐하게 만들었다. 약간의 부작용도 있다. 이토록 친절하고 훌륭한 지도를 손에 쥐어줬는데도, 요단간 건너가 만나볼 그 나라만 꿈꾸게 하는 이 땅의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분노하게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나는 이 책의 부제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교회는 말하지 않고,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라고. 이 땅의 수많은 교회는 말하지 않고 이 땅의 국가는 숨기는 ‘불평등’의 문제. 이제는 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성서가 수천 번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듯이, 참된 교회라고 삶으로 말해야 한다.


빈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부족만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성서가 가르치듯이 구조적으로 부의 불평등을 재분배하는 노력이 바로 ‘복음의 또다른 실현’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힘과 돈을 가진 자들, 그렇게 맘몬과 손 잡은 자들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세상에서 편들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그들의 반대편에서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는 이 시대의 ‘지극히 작은 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한다. 그렇게,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편드는 신앙으로 살도록 앞장서는 것이 교회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난 이천 년 넘게 이어져온 기독교 신앙의 정수다. 이 책은 그 길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되어줄거다.


우리 모두,

연약한 이를 편드시는 성부와

싸움꾼이신 성자와

울보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 가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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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숫자-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지음 / 동녘 펴냄 / 374쪽 /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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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7/13 02:16 2014/07/1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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