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찾는교회 제대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4:11, 공동번역개정판)


----------------

오늘, 아니 어제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작년부터 성공회에도 새로운 선교적 형태의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오랜 동안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지 않은 걷는교회와 희년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그리고 지금 제가 함께 동행하는 길찾는교회는 물론, 질그릇교회, 씨앗교회, 노아의방주교회, 파주 우물교회 등 여러 교회들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질그릇교회(홍정수 신부님)를 개척하는데 동참한, 최희정 클라라 선생님의 손길을 통해 제대포를 선물 받은 겁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그 남편이신 조충연 프란시스 선생님과 홍정수 신부님, 그리고 질그릇교회 식구들의 결정으로 그 과정의 모든 비용을 감당해 주신 겁니다 ^.^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이보다 더 소중한 우정의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요?


---------------

알록달록한 퀼트로 장식하고, 초대교회 신자들이 비밀 예배처를 알릴 때 사용하기도 했던 물고기(익투스, ΙΧΘΥΣ)를 가운데 수 놓은 제대포.

저는 길찾는교회가, 이처럼 '다양한' 신앙 고백을 하는 이들이 '퀼트'와 같이 여러 모습과 방식으로 어울려 가기를 기도합니다. 꼭 같은 고백, 같은 모습과 방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는 길찾는교회가, 함께 예배드리고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사목적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치열하게 답을 찾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꼭 같은 답을 찾거나 항상 답을 찾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는 길찾는교회가, 성공회의 독특함을 통해 보편적인 그리스도교로 안내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성공회라는 교단이나 우리 교회만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재 함께 이뤄갈 수 있는 최선을 함께 하는 교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당연한 기준'에 충실한 교회이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할 겁니다.

다름을 인정하기에, 한 빵과 잔을 나누는 전례에 터 잡은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성찬, 애찬, 사귐의 영성'이 '사회적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함께 기도하고 연대하며 찾아와 주십시오. 언제든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


---------------

작년 겨울, 길 위에서 만난 '여러 순례자'들의 이야기와 만남을 통해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이 땅의 대다수 그리스도교와 신자들이 잃어 버렸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그 풍성한 그리스도교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새롭게 만나는 교회를 시작하기로.

그리고는 제가 사제 서품을 받을 때에 입었던 '백색 제의'에 장식한 '무지개 켈틱 십자가'를, 퀼트로 한땀 한땀 만들어 주신 클라라 선생님께 제대포 제작을 의뢰했었습니다.

그 작품이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을 거쳐 드디어 저희 길찾는교회 성찬 예배 가운데 놓이게 된 겁니다 ^___^

이 기쁨과 감격을 최 클라라 & 조 프란시스 그리고 질그릇교회 식구들과 나누고자, 함께 성찬 예배에 참여한 분들과 기념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옷! 그런데 본의 아니게, 사제 1명과 신자 12명이네요 ㅎㅎㅎ

'예수님과 열두 제자' 드립(!)을 치고 싶으나..

우리는 서로를 통해 주님을 만나니, 우리는 서로의 열두 제자이자 예수님을 맛보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ㅎㅎㅎ

아! 길찾는교회는 '오가는 이들에게는 소풍같은 교회, 머무는 이들과는 하느님의 꿈을 함께 꾸는 교회'이니, 지금 이분들이 모두 길찾는교회에만 속한 분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배타적으로 우리 공동체에만 속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소풍을 함께 누리고, 하느님의 꿈을 함께 꾸는 분들입니다 ^.^


---------------

제 명함에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이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길위의 순례자'들과 함께 길찾는교회를 시작하면서도, 이 제대포를 선물 받으면서도, 저는 이 요한의 첫째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5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 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20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

(요한의 첫째 편지 4:8-9, 11-12, 15-20, 공동번역개정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3/11/25 02:47 2013/11/25 02:47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www.zacchaeus.kr/rss/response/269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269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784 : 785 : 786 : 787 : 788 : 789 : 790 : 791 : 792 : ... 999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330378
Today:
1
Yesterday:
170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