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자고
'길찾는교회'가 되었다.

길 찾아 보자고
'길찾는교회'가 되었다.

헌데 그 길은 나도 모른다.

그냥 여기가 아닐까하고 가보자고 '제안'한 거지, 내가 '그 길'을 알고 있으니 나를 따르라고 한 게 아니다.

경계가 느슨하니 누구든 올 수 있다고 했다. 경계를 넘나드니 누구든 떠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우린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해야' 한다.

길 위에 선다는 건, 길을 찾는다는 건, 고려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거다. 당연히 더 많은 품이 든다. 그만큼 해야할 것들이 더 많아진다. 조정할 것도, 준비할 것도, 고민할 것도 더 많아진다.

좋아서 만나며 하고픈 것만 하고 안전거리 잘 유지하는 '동호회'가 되지 않으려면 이정표를 확인하고 가야할 때가 생긴다. 헌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한두 명이 확인하고 "가자~"하면 모든 게 쉬워지는데, 그러자고 길을 떠난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세심히 더 많이 조정하려면 그 만큼 일이 된다.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내야 하는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 길 위에 있는 거다. 쉬운 길이라면 시작도 안했을 거다. 그러나 새 길은 늘 옛 길과 겹쳐 있을 때가 많다는 지혜를 잊어서도 안 된다. 전혀 다른 길이 아니라, 새 길과 옛 길을 어떻게 발견하고 식별해 가느냐가 중요하다.

모두를 사랑한다는 건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하나의 경계를 넘기는 생각보다 쉬워도, 전혀 다른 두 개의 경계를 넘기는 어렵다. 헌데 세상의 경계는 선명하게 나타나는 하나가 아닐 때가 더 많다. 전혀 다른 두세 개의 경계를 넘어서야 할 때가 훨씬 많다.

힘든 만큼 즐거웠고, 아무렇지 않은 만큼 아픈 하루가 가고 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길찾는교회'의 최초 제안자와 공동 기획자인 한 명의 신부로, 새로운 제안과 기획을 시작해야 할 때이지 않나 싶다.

반 년 이상 걸려야 올 것 같았던 고민과 위기가 생각보다 더 빨리 온 것 같다. 축복이리라. 상처 입은 치유자는 상처와 인지 그리고 극복 이후에야 온전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자꾸 기도하게 되는 건, 혼자 다 알고 있다는 듯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모두의 지혜를 겸손히 구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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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3/05/13 02:56 2013/05/13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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