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불평등

내가 편협해서 그럴 수 있다는 전제로.


나는 '잘사는 부모 덕분에' 공부만 집중할 수 있었거나 유학 다녀와서, 그 학벌로 자리 잡은 사람들의 말은 한 수 접고 듣는 편이다. 더군다나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학문'이나 '현장성' 운운하며 자신들보다 앞서 자리 잡은 이들을 까는 글이나 말을 떠들어대면, 두 수 접고 듣는 편이다. 학문이든 현장이든 '문제의식'과 '맥락' 그리고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배웠고,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믿진 않지만, '자수성가형'이 정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자기 능력만으로 승부해 보지 않은 사람은 신뢰가 덜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20대가 넘어 30대가 되어가는데도 그런 부모가 있는 걸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시키며, '난 니들하고는 격이 다른 좌파입네'하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가 어질거려서 욕지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물적 토대'가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지만, 꽤 많은 걸 말해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기 손으로 벌어 먹고 살며 공부해야 하는 사람과 불로소득으로 먹고 살며 공부하는 사람은 꽤 다르다. 어떤 이들은 부모 덕분에 얻은 기회도 '똑같은 기회'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삶의 많은 문제가 '불평등' 그 중에서도 '기회의 불평등'이라고 보는 내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내 주변 사람들보다 좀 늦은 20대 중반부터, 전도사 또는 단기 알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로 스스로 벌어 먹으며 공부에 대한 끈을 아예 놓치지는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나. 그 와중에 가난한 엄니나 가족의 등에 빨래를 꽂고 '등골 브레이커'에다가 '빨대족'으로 위기의 순간을 모면했음을 잊지 않고 있는 나.


그런 내 주변에는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실력과 겸손을 갖추고도,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생계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학생 기간이 점점 늘어 가거나, 유학의 꿈을 조금씩 늦춰가며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길벗들이 꽤나 많다. 그런 내게는 '잘사는 부모 덕분에' 충분한 재정과 계급 지원을 받으며 '뭔가 다른 공부'를 하는 듯 사는 사람은 그저 '나사 빠진 한량'일 뿐이다.


그러니 내 주변에서 '진정한 학문'이나 '현장성' 또는 '유학을 다녀와 보니' 운운하며 얼쩡거리거나 까불다가 걸리면 가만히 안 있는다. 그런 말들은 '부모 덕분에' 잘 살고 있는 당신들 입에서 튀어나올 값싼 말들이 아니다.


그런 당신들보다 뛰어나도 '삶의 무게'를 홀로 지고 힘겹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길벗들과 마음 나누고 짐 나눠지기도 바쁘니, 내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라.


그리고 혹시라도 이처럼 '편협한 나'를 '길벗'이나 '친구'로 두고 싶다면, 당신 앞에 붙는 '~ 덕분'이란 게 '자랑'이 아닌 '기회의 불평등'을 얻은 '부끄러움'이란 걸 철저하게 인식하고 와라. 그게 아니라면, 나는 당신의 '길벗'이나 '친구'가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거다. 그저 함께 연대하는 '단위'나, 당신이 '이용'하고픈 발판이 될 지는 모르겠으나.


* 덧붙임. 참고로 그런 사람들의 글이나 말에 '감탄'하는 건 각자의 자유나, 제발 내 눈에 자주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이 간절하다. 내가 속한 '기독교'라는 동네나 '진보 기독교' 판도 워낙 좁아서 어쩔 수 없지만..


아.. 근데 왜 이런 사람들은 '기독교 판'에서 더 눈에 잘 띄는 거지.. 내가 너무 '기독교 판'에만 머물러서 그런가.. 아니면 기독교 판이 워낙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가..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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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5/11 03:01 2014/05/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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