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서

(최소한) 정통 그리스도교가 받아들인 성서는 사람의 언어로 쓰이고 번역되어 전해졌다.


그 성서가 그토록 전하려는 이야기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다.


그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분이 공의와 자비 그리고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고 다스리실 유일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천년동안 그리스도인들이 목숨 걸고 지킨 복음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성서를 통해 전해지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그러니 '사람의 언어'로 쓰인 성서를 통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란 복음을 전해 듣고 깨닫는다는 건, 다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첫째,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란 고백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하느님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눈높이'로 오셨다는 걸 고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신앙 고백이다.


둘째,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란 복음을 가장 잘 전하고 있는 성서가 '사람의 언어'로 쓰이고 전해졌단 건, '복음'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누구나 읽고 전해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해방적 선포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에서도 개신교 전통이 '오직 성서'에 기초한다는 선언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신교 전통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언어'로 쓰인 '성서'가 전하고 있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복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선언이다.


개신교 전통에서 '사람'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며 듣고 전하는 일, 다시 말해서 사람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 개신교 전통이라는 선언인 것이다.



그러니 '오직 성서'를 말하는 모든 개신교 신자들은 반드시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그 '사람의 언어'로 돌아가,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간절히 전하시려던, '사람을 통해' 하느님을 이해하고 깨닫는 일로 돌아가야만 한다.



교회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어본 적도 없는 '순수한(?) 복음'이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살던 '중세의 (일부) 타락한 교회'에 속한 것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 가운데 오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향해,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가 반드시 '돌아가야만' 할 곳, 그 '하느님의 품'은 교회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 가운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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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2/02 02:49 2014/02/02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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