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나눔의집 영성

길찾는교회는 햇수로 3년차. 만 2년에 접어들었다.

매순간이 기적이었다. 교회든 사회든, 어디서든 평균적 가치관을 따르기 보단 ‘별난 존재’로 살던 이들. ‘사회적 소수자’란 자각을 가지고 그렇게 살던 이들도 있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이들이 모여 종종 위태로운 순간들을 넘어서며 ‘안전한 시공간’을 형성하고 유지하며 ‘다른 이들이 한 빵과 잔을 나눈다’는 기쁨. 그리고 또 다른 소수자나 약자들과 ‘상호 존중에 바탕한 연대’를 지향하며 사는 설렘.

작년 12월에 발령받은 용산 나눔의집.

겨우 한 달. 그렇지만 지금도 척박한 조건에서 감당하고 있는 이주민 활동 만큼 마을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냉혹한 현실 인식’을 모른 척 하지 않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승리의 경험과 느낌’을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상상력’에 대해 나누고 다녔다.

길찾는교회와 용산 나눔의집, 두 곳을 섬기는 성공회 사제.

그 이름의 무게는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는 것 이상으로 무거웠다. 무엇보다 ‘다양한 맥락과 현실의 가난’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두 곳을 한꺼번에 섬긴다는 것의 무게. 혹시라도 나 때문에 길벗들이 더 힘든 건 아닌지, 자꾸 고민하게 되는 헛된 걱정.

그럼에도 뜻하지 않은 만남들 가운데 ‘우리들의 하느님’이 허락하신 천사들을 만난다. 그 ‘만남과 교차’ 가운데 ‘하느님의 미소’를 마주한다.

‘다양한 소수자성이 교차하며 연대하는 시공간’. 길찾는교회와 용산 나눔의집.

이 두 곳의 ‘교차점’으로 존재하는 나. 그런 나를 통한 두 곳의 ‘공명’이 어떤 ‘하느님의 미소’로 사람들 가운데 존재할지 모르겠다.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 그 틈 사이로 비춰오는 빛. 그저 그 한 조각의 빛줄기에 기대어 살고 있는 어느 하루.

나를 12년 전에 ‘또 다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디딤돌’이 되어준 “성공회 나눔의집 영성”을 다시 한 번 읽으며 타이핑해 본다. 다짐하듯이 간절히, 그리고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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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나눔의집 영성”

나눔의집은 가난한 이웃들이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신들의 인간적 존엄에 대하여 눈뜨고,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삶의 모든 질곡들(철거, 노동조건, 자녀교육, 실업, 질병, 가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주체로 나서게 하는 복음을 실천하는 신앙운동을 실천합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의 복음을 몸으로 사는 부활의 증인이고자 한다.

나눔의집은 종교와 관련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나눔의집 뿌리에는 예수와 복음을 몸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과 초대에 기꺼이 몸으로 응답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꿉니다.

둘째, 우리는 기도(묵상)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우리는 자유경쟁의 시장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속도와 경쟁과 자기 확장’의 삶에 몰두하지 않으며, 아름답고 정의롭고 거룩한 것에 대한 ‘경외(敬畏)와 찬양’, 비참하고 불의하고 병든 세상에 대하여 아파하고 분노하고 ‘사랑’하는 삶을 꿈꿉니다.

셋째,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이 참사람으로서의 자기실현을 위한 ‘길’이며, 세상을 계속 새롭게 창조해 가시는 하느님의 창조활동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허락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진실을 믿습니다. 우리는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의 신성함을 증거하고 회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넷째, 우리는 공동체로 살고자 한다.

우리는 죄가 이기심과 탐욕에 근거하며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공동체형성에 있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믿습니다. 우리는 갈수록 더해가는 공동체의 해체와 인간의 파편화에 반대하며, 복음이 가르치는 공동체의 원형을 건설하는 일에 힘쓰고자 합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이루는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와 가난한 이웃들의 인간적 성숙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다섯째, 우리는 투쟁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우리는 인류의 고통과 억압, 빈곤과 소외가 존재론적이고 사회구조적인 죄의 결과라고 믿으며 이 같은 죄스러운 현실과 싸우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웃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밭을 가꾸는 일과, 불의와 죄 앞에서 용기있게 투쟁할 수 있는 마음을 가꾸는 노력을 하나로 일치시키고자 합니다.

여섯째,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자 한다.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소유를 통해서 만족해하고 소유에 의지해 살고자하는 모든 우상의 유혹을 거부합니다. 복음이 가르치는 소유를 향한 외적 포기와 하느님을 향한 내적 귀의를 의미하는 ‘가난’을 선택합니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계급적 갈등과 이념적 갈등, 생태계의 위기의 중심에는 ‘탐욕스러운 집착’의 뿌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뿌리를 근원적으로 자르는 ‘자발적 가난’을 예수의 모범에서 배우고 따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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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6/01/08 01:48 2016/01/08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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