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방식

싸움은 계속되고 '고통의 자리'는 변함없다.

그래서 오늘도 공명하는 이들을 고통의 자리로 초대하여 그 고통을 나눠지거나,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방식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고통을 나눠지는 방식은, 그 사건을 겪지 않은 이들은 쉽게 알 수 없는 고통을 복사하여 고통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나 연대하는 이들이나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게 하는 상황만 반복되기 쉽다.

그 상황이 답답하여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건, 그저 고통을 나눠 짊어지고 아파하기만 하는 것보단 진일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또한 벽을 쌓고 아예 상대하지 않는 위력적 상대 앞에선, '싸우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는 방식이 되기 쉽다.

그 때문에 전례적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역할도 여기에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재구성과 재배치'라는 화두를 붙들고 함께 사유하는 방식.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상태'인 사건의 당사자들과 그 고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공명하고 있는 이웃들을, '중충적 방식'으로 만나게 하는 '종교적이고 전례적인 방식' 말이다.

과거의 방식을 호명해서 싸우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그런데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은 경험한 것에 토대하다 보니, 과거의 싸움 방식을 함께 사유하고 재구성과 재배치하여 오늘의 이야기로 자리잡게 하지 못한다.

'고통의 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모두를 그 자리에 초대하여 그 자리에만 매몰되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종교적이고 전례적인, 가장 정치적이며 여러 이야기들을 직간접적이고 중층적으로 마주하게 하는 방식을 함께 사유하고 상상해야 한다.

우리와 싸우는 그들은 자신들의 위력과 우리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풍자하며 비웃는 것과 싸움의 상대로 삼는 것은 다른 층위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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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4/14 18:21 2015/04/1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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