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아 버렸다.

그때 알아 버렸다.

아들 셋을 둔 홀엄니.. 배운 것도 물려 받은 것도 없고, 가족의 도움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던 홀엄니가 큰아들을 위해 선택하신 그 수많은 희생의 의미를.

내가 대학을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엄니의 맨손을 디딤돌 삼아 짓이겨 밟으며 한걸음씩 걸어 왔다는 것을 그때 알아 버렸다.

왜 그때 그렇게 강하게 반대하셨는지.. 왜 그렇게 내 가슴에 대못으로 박힌 욕을 하실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토록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을 막고 또 막으셨는지 알아 버렸다.

뒤늦게 다시 대학을 간다는 큰아들의 선택이 돈을 벌 수 있는 전공이 아닌, '신학'이라는 얘길 들으셨을 때에 엄니의 하얗게 질렸던 표정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하루에 세 시간 밖에 못 주무시며 식당 보조, 야간 청소, 미싱공장 보조 일들을 병행하며 모아 놓으셨던 돈을 등록금으로 내어 놓으시며 "네가 하고 싶은 일 해야지.."라고 말씀하셨던.. 그리고는 뒤돌아 등이 구부러지도록 목놓아 우셨던 엄니의 울음을 기억한다.

그렇게 첫 등록금을 내고 바로 일을 찾았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몇 번의 휴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조금씩, 내가 살아온 걸음마다 엄니의 맨손이 놓여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오랜만에 쉬는 날. 평소보다 한두 시간 더 늦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원래 퇴근 이후에 모이던 세미나를 낮에 할 수 있다는 걸 감사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내 SNS 담벼락에 계속 노출되던 인터뷰 기사 하나.

"구글보다 요리였어: 산업디자인을 전공해 구글코리아에 다니다 요리사가 됐다(인터뷰)"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은 그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기사 중간중간에 노출된 그의 집안과 인적 네트워크 없인 불가능했을 그의 삶에 대해 쓴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실패한 이후 한동안 내게 큰 흉터로 남아 있던, 어떤 '특별한 계기'로 유학을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평범한(?) 교회 목사의 아들로 유학을 준비하던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결국 좌절되어버린 유학 준비로 많이 아파하던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일단 떠나라고. 빚을 져도 되고, 장학금도 있고..

내 대답은 간단했다.

"더 이상을 빚을 낼 수 없는 집도 있어. 내 발 밑에 엄니 손이 깔려 있는 걸 아는데, 내 욕심 때문에 한 번 더 힘을 내기 위해 그 손을 짓이길 수는 없어. 잘 다녀와."

이 하늘 아래 누군가,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 놀라운 결단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니 힘껏 축하할 일이다.

다만 나는 '그런 기사'를 읽으며 다짐한다. '그 기회와 과정 그리고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누군가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다면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싸워야 하겠다고. '간절함이나 선택과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부모나 집안 배경,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 말고도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말이다.


* 덧붙임. 이런 내가 신대원을 다니며 전도사로 살던 때, 나를 진심으로 아끼던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교단 교회의 좋은 집안 여성'을 만나서 '인적 네트워크와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지금 나는 그런 조언(?)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다.

그나마 조금 양심적인 거 같은가?? ㅎㅎㅎ 결혼 11년차인 나는 숱한 순간을 내 발 밑에 함께 살아주시는 분의 맨손을 깔고 짓이기며 살아 왔다. 인생.. 내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는 것들로 피눈물 흘리며 살 수 밖에 없는 순간 천지다. 그래서 하느님의 '참세상, 참사람'을 따르려는 사람은, 이에 저항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거라고 믿는다.

나같은 사람은 그렇게 믿어야 살 수 있는 지도 모르니 말이다 ㅋㅋㅋㅋ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5/05/06 02:35 2015/05/06 02:35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612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454 : 455 : 456 : 457 : 458 : 459 : 460 : 461 : 462 : ... 971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313377
Today:
32
Yesterday:
68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