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제3의 힘’ 또는 386세대가 정치 분야에서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이진순:
“룸살롱에 왜 갔냐 같은 건 화두가 아니고요. 기성정당의 논리와 자기를 구별하는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실패한 거예요. 5·18을 맞아 광주에 내려갔으면 선배 정치인이 끌고 간다고 해도 ‘저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하는 치기라도 보였어야죠. 재수 없어 터진 사건이 아니에요. 정치인뿐 아니라 우리 세대 중장년층, 60~70년대에 태어난 박정희의 아들딸들이 갖는 일반적인 성취지향성의 문제예요.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하고 힘을 가져야 해. 일정한 직급에 올라가면, 그때 가서 우리 회사를 이렇게 바꿀 거야’ 하고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가 변하는 건 생각하지 못한 거죠. 제가 요즘 이런저런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정말 도와줄 줄 알았던 선배 중에 ‘네가 대학교수 정도는 돼야 어디 얼굴이라도 나오지’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기존 문법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모두들 상상력을 잃어버렸어요. 끊임없이 자기 상상력을 반납하면서 기존 페이스를 따라간 거죠.”

김두식:
고지부터 점령하라는 ‘고지론’의 노예가 된 셈이네요.

이진순:
“그래서인지 옛날 똑똑하고 명민했던 선후배나 친구들을 다시 만나보면 다들 너무 삶에 지치고 부대끼고 닳아서 멍해져 있어요. 저 혼자만 10년간 어디 피난을 다녀왔나 싶을 정도예요. 그런 와중에 저에게 힐링을 주는 게 동네 아줌마들이죠.”

--------------

# 01.

사람들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더군다나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건 더욱 싫어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오늘, 아니 어제 내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엉킨 실타래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 02.

내 나이도 어느새 사십. 74년에 태어나 고등학생 때 전교조 합법화 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기사에서 386세대라 칭해지는 사람들과는 어떤 식으로든 같이 일을 해 왔다. 학교에서 선배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전교조 합법화 운동은 곧 흥사단 고등학생 아카데미라는 '고등학생 운동체'로 연결되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선배들(주로 NL)을 만나 운동이란 내가 학교에서 생각하던 낭만적인 것이 아닌 삶 전체를 건 절박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배워 갔다.

그러나 왠지 선배들의 꼭두각시처럼 생각하게 되고 진로를 결정하게 되는 것 같은 강박적인 분위기는 그곳에서도 나를 언저리에 있게 했고, 아카데미 회장 선거에서 선배들이 밀어 주던(?) 친구의 당선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란 생각을 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렇게 뜨거웠던 고등학생 운동꿘 학생의 시절이 지나가고 나는 신학대학생이 되는 반전.. 두둥!! ㅋ

허나 그럼에도 사회에 대한 다른 시선 갖기는 여전해서, 군대에 다녀온 뒤에 '앰네스티 한국지부'란 곳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나의 이십대 후반은 그곳에서 구성된 여성인권 그룹 활동과 '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이 큰 영향을 줬다.

헌데 그곳에서도 소위 386세대라 칭할 수 있는 사람들의 위력적인 활동은 여전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존중하되 극복해야 할 우리네 모습이라고 인식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까.. 나는 이 인터뷰에서 이진순의 입을 통해 얘기된 "60-70년대에 태어난 박정희의 아들딸들이 갖는 일반적인 성취지향성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너무 뼈저리게 느끼는 세대다. 왜냐면 선배 세대에 대한 애증을 말할 때마다, 그들을 존중하되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바로 이 인터뷰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하고 힘을 가져야 해. 일정한 직급에 올라가면, 그때 가서 우리 회사를 이렇게 바꿀 거야."

개뿔, 웃기는 소리다. 이진순도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살아남으려다가 그대로, 아니 더 뼈 속 깊이 닮아 있는다. 벌써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 03.

"지금은 칼을 갈아야 할 때야. 선배들한테 대들지마.
 뒷담화 싫다고, 아무리 애정을 갖고 앞에서 직언해도 그들은 변하지 않아.
 그들은 30대부터 '새로운 현장'을 개척했던 사람들이야.
 더군다나 '조직과 시대적 소명의 이름'으로 그 일을 해냈던 사람들이지.
 그 가운데 '사람다움'을 말하는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 사라져 갔어.
 오직 '성과와 성취'만이 남았지.
 변하게 할 '힘'을 얻는 데 집중하느라 '사람'은 간 데 없게 된 거지.
 헌데 그걸 지적하면 그들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되는 것 같이 느껴.
 그러니 그냥 맞춰 줘. 그들이 '결정권자' 잖아.
 그들 밑에서 크다가 나중에 힘이 넘어 오면 그 때 칼을 휘둘러도 늦지 않아."

정말 ㅈㄹ 맞은 소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에게 칼(힘)이 넘어 오면 정말 '제대로' 칼을 휘두르게 될까? 전혀. 오히려 똑같이 '성과와 성취'를 기준으로 칼을 휘두르게 될 거다. 아니 상상력은 더 빈곤하고 상황은 더 악화되어 있을 테니, 더 안 좋은 결과를 얻게 될 확률이 더 크다.

386세대는 '조직과 시대적 소명'이라는 바람막이라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는 그런 것마저도 없지 않은가. '네크워크와 선택적 접속', '주체끼리의 만남과 통섭'의 시대에 '조직과 시대적 소명'을 말하는 순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비웃을 테니 말이다.


# 04.

오늘, 아니 어제 생각지도 않은 귀한 조언을 들었다. 그 조언은 정말 '애정이 담긴 얘기'였다. 그 신중한 단어 선택과 눈빛만으로도 그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고도 남았다.

그 조언을 듣고 하루 종일 진중한 마음으로 되새기고 또 되새길만한 얘기였다.

헌데.. 그 얘기의 핵심과 맥락은 다르지 않았다.
이제 겨우 사제 1년차이고 조직의 한 사람이라면,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십대 고등학생 운동꿘 시절에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기회를 포기한 대학생 출신 지도 선배들에게 반항(?)하던 내게 고딩 선배들이 하던 말이다. 이십대 후반 앰네스티 활동을 하면서 소위 386세대 지식인 활동가들에게 '사람이 먼저다'라고 다른 의견을 얘기하던 내게 그들이 하던 답이다.

마치 개미지옥을 걸어 들어가는 개미들의 행렬과 같은 답변들 속에서, 이진순의 '다른 생각'은 큰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정말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 나 혼자 내쳐지고 마는 거 아닌가..'라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그 조언들 속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빛과도 같다.

안타까운 건, 이진순이란 사람이 그 386세대의 핵심에 있다가 한 십 년쯤 떠났다가 돌아온 '외부인'이라는 것이다. 외부인이어야만 보이는 것이라서 안타까운 것이다. 이 '외부인의 시선'을, 자신이 갖고 있던 '미국 대학 교수'라는 '힘'을 다 내려 놓고 돌아온, 이 '외부인의 직언'을 현재 386들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테니 안타까운 것이다.


# 05.

본인이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힘'을 가진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농담을 할 때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두려움과 불안'을 기반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너 하나쯤은 내가 맘만 먹으면 어떻게든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던지는 농담은, 농담이 아닌 폭력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농담이 아닌 조언이랍시고 하는 말이라면, 이건 정말 '진상' 수준이다.

그런데 알만한 사람들이 왜들 그럴까..

이진숙과 김두식은 말한다.

"그렇게 기존 문법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모두들 상상력을 잃어버렸어요. 끊임없이 자기 상상력을 반납하면서 기존 페이스를 따라간 거죠. 고지부터 점령하라는 ‘고지론’의 노예가 된 셈이네요. 그래서인지 옛날 똑똑하고 명민했던 선후배나 친구들을 다시 만나보면 다들 너무 삶에 지치고 부대끼고 닳아서 멍해져 있어요."

그토록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자신들이 바꿔야 한다는 조직과 시대적 소명에 가득 차서 변화의 힘을 얻고자 노력하던 386세대. 그들이 이 직언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아니, 그들의 후배인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되 닮지 않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06.

이 새벽, 다시 한 번 즐겨 읽는 성서 구절을 펴서 읽는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 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요한 일서 4:15-19, 공동번역 개정판)


# 07.

사람들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더군다나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건 더욱 싫어한다.

헌데.. 아무리 자신보다 못한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표현일지라도, 앞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것은 '아직' 애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아직' 앞에서 대드는 후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공개적'으로 말하는 후배들의 입을 틀어 막지 않을 때, 비로소 '상상력'이 다시 꿈틀 수 있다.

자본의 '공포와 불안 마케팅'을 흉내 낸 듯한 서툰 '공포와 불안 조성'으로 입막음을 해 봤자, 뒷담화만 늘거나 뒤에서 칼을 갈다가 그 뒷담화과 칼날에 우리 모두 함께 망하게 될 것이다.

인터뷰를 다시 한 번 읽게 된다.

김두식:
학생운동 시절에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이진순:
“제가 잘못한 것만 열거해도 엄청나죠. 예를 들면 지금 사는 성수동은 제가 야학 했던 동네예요. 야학에는 두 종류가 있었어요. 교회 같은 데서 하는 검정고시 야학과 우리가 하던 노동 야학. 노동자들은 주로 검정고시를 위해 야학에 왔어요. 그런데 거기다 대고 검정고시 꼭 봐야 하냐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만 했죠. 그때 그냥 검정고시나 제대로 가르칠걸 하는 후회가 돼요. 흔히 386들은 자기 잘못한 거는 말 안 하고 고생한 무용담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옛날에 뭐 했는지가 뭐가 중요해요, 지금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죠.”

김두식:
그래도 저는 우리 세대의 정통성이 1980년대 고시, 유학, 취업 준비한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이진순:
“김 교수도 이제 옛날 일은 잊어버리고, 지금 어떻게 사는지를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좋겠어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69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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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3/05/11 06:23 2013/05/1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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