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강연과 한 번의 토론회.


(설익어 부끄럽지만) 내 속마음과 성찰을 한 번 펼쳐내고,

서로의 마음을 감싸 안고 다음 한 걸음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


길목협동조합에서 진행한 "가난, 교회, 신학"에서 얻은 귀한 경험.


한 주 동안 감기몸살로 끙끙거리면서도 내겐 참 귀하고 다시 없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어제 두시간 반 동안 나눴던 종합 토론과 이후 뒷풀이 시간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고 얻은 것도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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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도록 간단히 정리해 놓는다.

첫째, 어떤 사람도 어떤 공동체도 '완벽한 존재'는 없다. 그러니 서로를 바라보며 배울 수 있는 거다. 나도 완벽하지 못하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 말자.

그마저도 없을 때, '아직' 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존재도 많다는 걸 잊지 말자.


둘째, 동양철학까지 운운할 것도 없이, '날카로움'과 '둥그스름'은 항상 함께 해야 한다. 이는 특히나 공동체나 조직에서 필수다. 날카로움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 사건과 관계가 많아질수록, 둥그스름하게 감싸안고 서로를 인정해주며 울고 웃어야 할 일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 이론(신학), 영성'을 잇는 일이 필요한 때다. 누구나 당장 눈에 띄고 효과나 반응이 금방 나타나는 일을 우선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둠과 맘몬의 속삭임이 우리 몸과 영혼까지 깊숙이 자리 잡은 이 시대에는, '정화'를 위해 '웅크리고 키우는 일'이 먼저다.

이전과는 조금이라도 '다르고 갱신된 길'을 가려는, '사람과 이론 그리고 영성의 이야기'를 이어 공명하게 하는 일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넷째, 열매를 바라기 전에 웅크리고 앉아 물을 주고 사랑을 주며 '안전한 공간'임을 알게 해야 한다. 이 시대는 '효율의 시대'다. 심지어 어린이 교육이나 순박하게만 보는 사람들도 충분한(?) '금융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아 '작은 효율로 몇 배의 이자'를 걷는지에 예민하다.

이런 시대에 '모두가 좀 더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외치는 '진보'라는 사람들만이라도, '결과'와 '효율'을 말하기 전에 웅크리고 앉는 일부터 하는게 필요하다. 하느님과 서로 앞에 멈춰 웅크리고 앉아, 서로에게 물을 주고 사랑을 주며 그 만남과 공간이 '안전한 공간'임을 확인시키는 '기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아무리 심거나 물 주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이 중요하다고 해도, 씨를 심지도 물을 주지도 않고 열매부터 예측하는 건 '도둑 심보'다(1고린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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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1/26 03:22 2014/01/26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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