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이라는 잡지가 있다.

개신교 복음주의권 잡지인데, 10월호의 '이슈 기획'으로 “WCC를 바라보는 세 개의 눈”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10월 28일부터 진행되는 WCC 10차 부산 총회를 앞두고, WCC에 대한 이해를 돕고 보수적인 풍토의 한국 교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조금이나마 짚어 보는 기획.

나는 그 가운데 WCC 부산 총회 유치에 적극적이었고, 현재도 중심축에 있는 NCCK 소속 교단에 있는 사람이자, 다양한 방식으로 WCC 부산 총회에 참여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글을 의뢰받았다.

문제는.. 다른 용건으로 통화하던 중 구두로 의뢰한 복상 편집장님이나 의뢰 받은 나나, 둘 다 정확한 약속 없이 "그렇게 하면 좋겠네요." 정도이었다는 것 ㅎㅎㅎ

그래서 마감 2일 전, 원고에 대해 확인해 오신 편집장님과의 즐거운 통화 후에 부랴 부랴 원고 정리 ㅋㅋㅋ 이메일 등과 함께 정식으로 원고 의뢰한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잊었던 나나, 구두로 의뢰하신 후 깜박하고는 기다리고 있던 편집장님, 이 둘의 환상 실수 ㅎㅎㅎ

비문에 비약 투성이인 글을 다듬어 주신 편집장님의 놀라운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좀 여유 있는 호흡으로 썼다면 말하고픈 것을 좀 더 잘 전달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 한 가득.

나는 WCC 부산 총회 총대가 아니다. 현재로는 여러 이유로 총회 기간 동안 부산에 내려갈 생각도 접었다. 다만 성공회 서울교구 스태프이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WCC 부산 총회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나누는 정도의 글을 썼는데..

앞으로 좀 더 좋은 글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자 여기에 '기고 원글'을 올려 놓는다.

최종본이자 수정된 글은 <복음과상황> 웹페이지에 올라 있으나, 회원가입 후 읽을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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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주를 좇아 언저리로 떠나자!"


글을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를 확인하려고 한다. 첫째,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둘째, 비아냥거리기는 쉬워도 포기하지 않고 대화하며 함께 변화를 이뤄가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나는 NCCK와 WCC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사람이다. 에큐메니컬 정신과 연대 활동을 통한 변화의 한 걸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의 글은 이런 전제에서 시작된다.

질문해 보자.


그럼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WCC 10차 부산 총회를 유치하고 기획하여 준비하는 한국 교회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왜 묻느냐고?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는 마태오의 복음서 6장 21절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장 관심 있는 걸 위해 우선적으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 부산 총회의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어디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2013년 대다수 한국 교회의 관심사를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보고 느끼기에 부산 총회의 준비는 물론 앞으로의 진행 과정도, 수고하는 이들의 노력이나 기대하며 참여하는 이들의 애정과는 별개로 많은 고민거리를 갖게 한다.

이런 고민은 WCC 부산 총회를 반대하기 위해 자신들을 ‘의인’이나 ‘남은 자’인 것처럼 자처하는 입장과 다르다. 그들이 WCC를 ‘배교 집단’으로 매도하며 반대하기 위해 동원하고 있는 왜곡과 불안, 공포 마케팅의 저열함과는 분명히 입장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 기독교회의 대다수가 참여하고 있는 WCC의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고민과 갈등의 오래되고 깊은 맥락을 살펴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순결한 무지’로 무장한 일부 신자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신학적 입장과 신앙으로 포장된 이해관계를 강화하고 구축하는데 더 집중하는 것 같다.

나의 고민은 그런 이들의 입장과는 다른 질문으로부터 생겼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질문으로 부산 총회를 바라보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 총회를 주도하고 있는 교단들은, NCCK는 물론 한국 기독교에서 나름대로 진보이거나 개혁적인 신학과 신앙고백을 지향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 준비하고 있는 부산 총회가 그렇게 준비되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부산 총회는 그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교회의 존립 근거인 선교적 정신과 태도를 잘 유지하고 있는가?

둘째, 부산 총회에 동원되는 수사를 살펴보면, 이번 부산 총회는 한국교회의 자부심이 되도록 화려하게 준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화려한 만큼 세심한가? 세심한 만큼 배려하고 있는가? 배려하는 만큼 스스로 청빈하게 운영하는가?

셋째, 교회와 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소수자이자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로 존재해 온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나 젊은 신자들이 있다. 이들의 목소리와 현실을 나누고 대안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넷째, 대다수 세계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성소수자(LGBT)를 비롯한 새로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민을 나누는 자리와 기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다섯째, 7년에 한 번 만나 단순히 세계 기독교가 이 정도의 세(勢)가 있음을 과시하는 보여주기 행사가 아니라면, 새로운 7년을 맞이하기 위해 세계 기독교 간, 작게는 한국 기독교 간 협업(Co-Working)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능하게 하는 장이 되고 있는가?

우리 수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 어마 어마한 에너지와 돈, 그리고 시간을 들여 WCC 총회를 하는 이유를 쉽게 말해 보자. ‘교회와 신자들이 각자는 물론 서로를 도와 ‘Missio Dei’를 살도록 추동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부산 총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며 묻고 있는 ‘선교적 정신과 태도를 잘 유지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다. 부산 총회의 준비와 진행 과정은, 신자와 사람들이 기대하는 깨끗하고 정직한 과정을 통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섬기는 일관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가?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이란 조직이 있다.1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협력하고 있는 곳이다. 그들이 WCC 10차 부산 총회가 진행될 부산 벡스코(BEXCO)에서 ‘2011년 부산세계시민사회포럼’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백서2에서 전체적인 진행에 대해 상세하게 요약하여 공개하고 있다. 물론 그 준비 단계에서부터 홈페이지는 물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공개해 왔다. 백서에서 예산 내역은 물론 결산 내역 또한 공개하고 있다. 일반 시민사회의 눈높이와 기준이 이미 이런 수준이다.
 
그런데 WCC 10차 부산 총회는 어떨까? 무엇보다 중요한 프로그램 위원회의 진행 게시판을 살펴보자. 2012년 여름에 첫 회의를 했다며, 의제도 없이 일시 장소만 알리는 공지사항만 덩그러니 게시되어 있을 뿐이다.3 그나마 그마저도 없는 프로그램 위원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골격을 짜는 각 프로그램 위원회에서 어떤 의제를 설정하고 어떤 방식에 의해 논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를 한국교회를 비롯하여 세계 교회, 나아가 한국사회와 어떻게 공유할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이다. 전체적인 진행에 대한 공유와 공개마저도 이 수준인데, 예산과 결산 내역 공개와 검증은 또 어떠할까?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자살률과 자살률의 증가로 악명이 높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과 청년층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자살’이라는 증상을 말하고픈 게 아니다. 많은 경우 ‘사회적 타살’로도 볼 수 있는 이 땅의 죽음 앞에서 한국교회들이 침묵과 방조, 나아가 본의 아니게 동조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때에 부산 총회라는 커다란 ‘전환’의 기회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 묻는 것이다.  

2013년,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지표에서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10~20대 청(소)년과 30~40대 젊은 신자들이 빠르게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영성은 좋지만 교회는 싫어!”라는 말처럼, 다른 영성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있다. 이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건 둘째 치고,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대체 뭘까? 내 마음을 관통하는 두 가지는 바로 '삶으로 보여주는 교회'와 ‘그들의 고통과 이야기에 동참해주는 교회’다.

그런데 부산 총회에서는 이런 청년과 젊은 신자들을 위한 고민과 목소리가 너무 적게 담기는 것 같아 답답하다. 무엇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자리는 거의 찾을 수 없으니 못마땅하기까지 하다. 전 세계 교회에서 비교적 젊은 교회에 속하면서도,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한국교회가 이에 대한 행동은커녕 어떤 목소리와 입장도 갖지 못하는 것 같으니, 대체 이를 어찌할까.
 
풍성한 말과 글의 향연은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꽤 그럴듯한 신학적 입장과 태도도 삶으로 드러나고 고통 받는 이들의 곁에서 구체화되어야만 복음의 생명력을 갖는다. 거리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기독교냐 보수적인 기독교냐 하는 걸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WCC 부산 총회에 찬성하는 교회냐 반대하는 교회냐 하는 걸로 우리를 나누지도 않는다. 이 시대의 고통 받는 사람들은 누가 더 의로운 말을 많이 하느냐보다는 그들 곁에 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WCC 부산총회 기간 동안 세계 교회의 지도자들이 ‘평화 순례’라는 이름으로 판문각이나 DMZ에 방문해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에 있는 한국 교회 현실을 ‘보고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빛의 순례’나 ‘평화 열차’라는 단발성 이벤트에 개인당 몇 백만 원씩 부담하거나 후원 받아, ‘뭔가 있어 보이는 일’을 하는데 공을 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총회 기간 동안에 각 교단의 ‘성공한 몇몇 대형 교회’를 방문하며 한국 교회의 ‘외형적 성공’에 감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70~90년대에 적합한 특수했던 한국교회의 성장 기법을, 마치 새마을운동 사업을 수출하듯이 전시하여 자랑하고 전수하겠다고 투지를 불태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압축 성장으로 인한 온갖 왜곡과 불평등 그리고 최면과 중독에 사로잡혀 있는 대한민국. 그리고 수많은 한국교회들이 그 과정에 침묵하거나 방조 또는 동조하다 못해 매몰되어 버린 현실. 그로 인해 빠르게 교회를 떠나고 있는 젊은 세대들.

이들을 위해 한국교회는 부산총회를 통해 답할 수 있었다. 이미 그들의 곁에서 함께 고통당하며 싸우고 계신 주를 좇아 그 언저리로 떠나는 ‘전환’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또 다시 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눈물 어린 기도가 더해질 뿐이다.

이제 주의 뒤를 좇아 언저리로 떠나야만 다시 그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교회에 대한, 부산 총회라는 커다랗고 화려한 이벤트가 아닌 그 전환의 기회를 통해 한 번 더 새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 어린 고백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교회는


교회에 신비가 없다면

교회에 저항이 없다면

교회에 치유가 없다면

교회에 기적이 없다면

교회가 지극히 작은 자들에 대한 마음과 지향이 없다면

교회가 신자들을 향한 애틋함과 이웃들을 향한 애절함이 없다면

교회가 자신이 목적이 아닌 도구임을 잊는다면

교회가 구원이 자신을 통해서만 이뤄진다는 착각을 계속한다면

교회가 교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가난하고 목소리 잃은 이들과 벗하지 못하고
맘몬과 권력이라는 존재와 하나가 되어 사는 길에서 돌아서지 않는다면

교회에서 배운 이들의 목소리만 들리고
그렇지 못한 이들의 통곡과 깔깔거림이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그곳을 '교회'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위로받고 배워온 '교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곳을 '교회'라고 부르며 섬기라고 '사제'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그곳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주님은 그곳에 머무는 이들을 단 한 번도 포기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이 포기하지 않으셨으니 나 또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니 나도 주님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교회가 주님과 우리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주님과 우리가 교회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이 가시는 곳으로 교회가 뒤따르는 것이지
교회가 가는 곳으로 주님이 뒤따르시는 게 아니란 것이 진리이다.
- 2013년 6월 9일 블로그 글에서.


민김 종훈(자캐오) 신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NCCK 청년학생선교연구와 협력위원회 교단 파송 위원.)

한영신대와 한세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여성인권 그룹 활동을 통해 세상을 배웠으며, 성공회 나눔의 집 활동가로 ‘동네 골목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후 성공회대 신학대학원 졸업. 현재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소속 사제이자 서울교구 교육훈련국 ‘젊은 또래사목 담당’으로 있으면서, 성공회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선교적 교회 운동의 하나로 ‘길찾는교회’를 섬기고 있다. 평등 부부를 지향하기에, 동반자와 더불어 서로 거울삼아 조금씩 성장하는 아픔과 기쁨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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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rea Civil Society Forum on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에 관한 정보는 홈페이지(http://www.kofid.org/)에 자세히 나와 있다. [Back]
  2. http://www.kofid.org/ko/bcsf.pdf [Back]
  3. 필자는 2013년 9월 11일에 〈WCC 제10차 부산 총회〉 홈페이지(http://www.wcc2013.kr)에서 프로그램위원회 게시판 전체를 살펴보았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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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3/10/04 03:23 2013/10/04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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