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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어 놓은 게 10월 말이었다.


# 꽃의 인사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꽃들의 인사는 내게 늘 많은 위로를 주곤 했는데,

특히 이렇게 드문드문 피어있는 꽃이 건네는 인사는 남다르다.

아마도 이 친구들이 피어 있는 자리가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런 것일거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서야 이 친구의 인사를 이곳에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길목,

이 친구는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인사를 건넬 수 없는 이 시기에..


# 인사조차 버거운 일상.


11월 첫 주일에는 WCC 총회와 겹쳐 캔터베리 대주교의 서울교구 방문이 있었다.

그 방문과 관련해,

〈한국교회 청년들,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묻다〉 간담회 기획 및 진행,

서울교구 행사 지원으로 그 주간 내내 정신 없이 바빴다.


그 가운데 12월 첫 주 대림 1주일에 맞춰 나가야 하는 어린이 교재 각색 및 윤문 작업 진행.

그러다 보니 8-9시에 퇴근해서는 저녁 먹고 바로 졸도하듯 잠들었다가, 새벽 2-3시에 일어나 매실차나 커피에 의지해서 5-6시까지 원고 붙들고 끙끙.. 다시, 잠깐 한두 시간 눈 붙이고 출근하기를 몇 주 째 반복 중이다.


그리고 지난 주 토요일엔 중요한 교구 어린이 행사인 〈어린이 문화제: 성탄을 기다리며〉 진행.

주일엔 "진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공동체 상영회와 '사랑의 식탁 예식' 진행.

그래서 일까.. 어제는 하루 종일 감사성찬례와 모임 내내 울었다.


# 첫 번째, 울다..


첫 번째는 대학로교회 추수감사주일 복음 말씀을 읽는 시간 내내 울었다.

길찾는교회 성찬 예배 전반부를 '영화 상영회'로 진행하기로 결정하니, 성공회 신자가 아닌 분들도 많이 오실 수 있다고 예상되었다. 그래서 '성찬 예배'를 '사랑의 식탁(애찬) 예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

그러다 보니 하나의 식탁에서 축성된 한 빵과 잔을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공회 신자로서,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 찾은 성공회 대학로교회.

마침 추수감사주일이었고, 복음 말씀은 마태오의 복음서 6장 25절부터 33절.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 걱정하지 마라."

사제의 입을 통해 또박 또박 전해지는 그 복음 말씀을 듣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 두 번째, 울다..


두 번째는 "진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을 보는 내내 울었다.

람베스 회의 기간 내내 왕따를 당한 진 로빈슨 주교.

그런 그를 초대한 영국성공회 교회에서 위트 있게 설교를 시작한 주교.


갑자기,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회개라는 미명 하에 저주를 퍼붓는 어떤 반대자.


결국 내쫓긴 그가 나간 문을 잠시 응시하다가,

눈물을 참으며 담담히 말하는 주교의 한 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그를 위해 기도합시다."


2010년 미국성공회 관구의회에 제출된 '성소수자 주교 성품' 동의안.

너무나도 다른 입장을 가진 서로의 얘기를 무겁게 경청하는 대의원 성직자와 신자들.

그 가운데 한 여성 성직자의 눈물 어린 고백.

'나는 당신들의 고통과 아픔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내게도 이 문제로 교회를 떠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 나도 많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켜온 내 신념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투표해야 한다면, 반대표를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울먹이며.. 눈물과 깊은 아픔으로 고백하듯 말하던 그..

그의 고백을 듣는 내내,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 말을 걸어 오다.


다시 걱정과 두려움이 많아진 나..

그런 내게 성서 속 말씀이 말을 걸었다.

"저 새와 꽃들을 보렴. 저들도 내가 저렇게 돌보는데, 하물며 너를 돌보지 않겠니?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게 필요한 것들을 다 알고 있지 않니."


이미 충분히 과부하로 고생하고 있으나,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동참하는 걸 포기하지 못해서 겨우 겨우 한 걸음씩 움직이고 있는 나.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기에,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일일히 고맙다고 말하는 여유도 없이 웅크리듯 살아가고 있는 나..


이런 내게 어제 한 번 더 만난 영화 속 눈물들을 통해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 담아 듣고 마음을 담아 바라보렴. 그럼 진실을 듣고 보게 될 거야.

꾸밈 없이 진솔하게 말하며 살려고 노력하렴. 그럼 사람들이 네 진실을 듣고 알 될거야.

혹시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마렴. 언젠가는 달라질 거야.

매번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건 네 몫이 아니야.

그저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렴. 나머지는 다 내가 한단다."


# 누구에게나 꽃이 피어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미국성공회 관구의회를 지켜 보며, 입장이 다른 서로의 얘기를 무겁게 듣되 진솔하면서도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의사 결정 구조와 문화가 부러웠다.

같은 성공회라도 내가 속한 대한성공회는 다른 맥락과 문화적 배경과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완벽하진 않아도 배울만한 그들의 구조와 문화를 공유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독재자들이 많은 이들에게 당당하게 칭송받으며 살고 있는 이 땅에 있는 교회이니..


그럼에도 그들과 우리, 그리고 성서에 등장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공통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건 그 모두의 영혼 속에는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꽃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만으로도 고맙고 고마운 것이 바로 서로의 영혼 속에 핀 꽃이란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침잠'이다.

그 꽃을 만나러.. 내 안에 핀.. 네 안에 핀.. 우리 안에 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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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3/11/11 05:20 2013/11/11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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