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이유

‘종신 부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기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렇게 쉽지 않은 식별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세워짐에 응답했다.

‘성공회 신부’라는 이름으로 살면 포기해야 할 것들과 짐들이 많아지지만, 내 기준에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종신 부제직에 대해 묻고 다니던 내게 동료 선후배들이 가장 많이 해준 조언과 격려(?)가 그것이었다.

사제 서품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 식별이란 것이 어느 순간에 완료되거나 취득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다는 말들과 함께.

헌데 어떤 모임이나 회의에 참여하고 나면, 나는 그저 ‘서품 3년차’ 막내 사제일 뿐이란 걸 절감하게 된다. 내 기준에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여전하며, 포기하거나 감당해야만 하는 것들은 늘어만 간다.

재밌는 건, 최근에 이런저런 만남이나 대화 그리고 강의를 하다 보면, 마치 내가 그분들이 알고픈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될 때가 있다. 그분들이 이루고픈 것에 한걸음 더 다가서 있는 것처럼 얘기될 때가 있다.

헌데 누구보다 내가 안다. 나는 그저 서품 3년차 사제이자, 한국에서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성공회 사제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알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루고픈 것에 한걸음 더 다가서 있지도 않다.

그래서 어제는 평소에 자주 듣는 질문인, "사제 서품 받으면 지금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우리가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항상 기존에 쌓인 것들이나 앞에 놓인 것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살죠. 그런 면에서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지만 얻어지는 특정한 '전문성'을 인정받거나 존중받는다는 건, 분명 도움이 돼요.

헌데,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싶어요. 지금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사제 서품 받고 난 뒤에도 아무 것도 못할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게 좋아요. 내가 지금 할 수 없는 게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인지 말이예요. 혹시 그걸 핑계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미루고 있는 건 아닌지요."

결국 지금 할 수 없다면, 나중에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수만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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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9/25 02:05 2014/09/2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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