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은, 길찾는교회 식구들과 함께 만난 하느님은 '편드시는 하느님'이시다.

이 땅의 눈물 고인 곳, 신음 쌓인 곳, 깊은 한숨이 머무는 곳으로 성육신하신 분이다.

개인 양심과 사회 구조는 결코 둘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 구조적으로 나눠 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상대적 약자인 개인에게 짊어지게 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불완전한' 개인의 양심에는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아니, 어찌보면 그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편드시는 하느님'은 우리 각자의 개인 양심을 소중하게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더욱 사회 구조적 문제 제기와 해결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아니 하느님의 꿈이나 갈망마저도 '도구화'시키고, 눈과 귀를 틀어 막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질주하는 우리의 삶을 돌이키고자 성육신하셨다.

나의 하느님, 우리들의 하느님이 '편드시는 하느님'이시니, 마땅히 신자라면 그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이 땅의 눈물 고인 곳, 신음 쌓인 곳, 깊은 한숨이 머무는 곳으로 가야 한다.

바로 거기, 성육신하여 우리의 하느님을 더욱 명확하게 계시하신 예수님이 계신데, 대체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대체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것인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이들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신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껍데기만이 아닌, 속까지 신자 한 번 되어보려거든, 냉큼 일어나 이 땅의 눈물 고인 곳, 신음 쌓인 곳, 깊은 한숨이 머무는 곳으로 가야 한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예수님이 함께 울고 계시고, 함께 고통 당하며, 함께 외면당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육신하신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당한 자로, 살 곳 잃은 자로, 쫓겨난 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12일, 사순 1주간, 첫 번째 수요일. 길찾는교회 식구들과 '편드시는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재능교육 투쟁 현장' 혜화동 본사 앞 농성 천막에서 '수요 저녁기도와 간략한 애찬 예식'을 시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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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아픈 시선이" -이지음 작사/작곡

주님의 아픈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로 거기 있게 하셔서

주님의 아픈 마음을 알게 하시고 주와 함께 울게 하소서

주님의 아픈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로 거기 있게 하셔서

주님의 아픈 마음을 알게 하시고 주와 함께 울게 하소서

그 눈물 이제는 보게 하셔서 나로 주와 함께 울게 하소서

주님의 아픔 나의 아픔이니

그 마음 이제는 품게 하셔서 나로 주를 따라 걷게 하소서

나의 손과 발이 주의 것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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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3 03:08 2014/03/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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