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지금도 그런 부분이 많지만, 나는 한때 요즘 내 입장과 정반대에 있는 분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며 믿고 살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리 살았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게 분명하거나, 아직 알 수 없는 분들을 만나 소통할 때엔 꼭 지키는 게 있다. 내가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외엔 ‘언제든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다. 간혹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믿던 사람들에게도 실망하는데, 하물며 그 외의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만나면, 많은 경우 내가 정한 ‘안전선’(또는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쉽게 흥분하거나 냉랭하게 비난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사람과 교차되는 지점을 찾아 ‘다른 입장’을 넘어서는 ‘디딤돌’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나도 그랬었다. 그것이 ‘좌파적 지향’이든 ‘좀 더 진보적인 생각과 행동’이든, 처음부터 그리 생각하거나 믿고 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준 ‘기회’때문에 지금처럼 살고 있게 된 거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내어준 그 ‘디딤돌’을 딛고 오다 보니, ‘지금 여기’의 생각과 행동을 하고 신념으로 정하게 된 것이다.

내가 아주 분명하게 믿는 것, 이 사회와 우리들의 관계를 위해 더 좋은 것이니 ‘당신도 동의해 달라! 아니 동의하는 게 옳다!!’라고 설득할 수 있다. 때론 그걸 위해 아주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다. 그것을 위해 ‘투쟁’ 또한 당연한 과정이다.

다만 나는 나에게 ‘변화의 기회’를 준 사람들, 그들이 보여준 그 끈기, 교차 지점을 찾아 하나씩 디딤돌을 만들어주던 그 애정과 실력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공부하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내가 정한 ‘안전선’(또는 범주) 또한 앞으로 끊임 없이 반성되고 숙고하여 갱신되어야만 하는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나 둘씩 내치기만 한다면, 나는 교회 종탑 십자가 위에 홀로 서 있는 눈먼 천사처럼 살면서 나 이외의 사람들을 비웃기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 덧. 분명 아닌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어떻게’ 말하느냐, 그리고 ‘함께 넘어설 지점’을 찾느냐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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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6/01/07 00:43 2016/01/0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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