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수자 운동'에 동참하게 되면서 한계로 다가왔던 점 하나 정리해 봅니다.)

억울할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계속되는 딜레마 속에서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억울함을 푸는 게 목적이라면 판을 엎어버리면 끝이나, 다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게 목적이라면 냉정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해져야 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앞뒤 전후를 모두 살피고 '판단'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평소에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람을 딛고 판단한다. 내가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일수록 더 그렇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삶이 팍팍하고 가진 자들에 의한 부조리한 일이 많아질수록 더 그렇다. 안타깝게도 이게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니 억울할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어느 쪽이든, 내가 원하는 '완전하게 공정한 시공간'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미묘한 문제를 언급할수록 신중하고, 감정선을 조심해야 한다. 상대를 이기거나 완전히 설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과 다른 생각도 공존할 수 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억울하니 나는 항상 피해자, 또는 정의의 편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억울한 사람을 도우니, 나는 옳은 일을 한다는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세상사 그리 간단하던가? 그렇다면 왜 피 튀기는 논쟁이 있겠는가? 살면서 흑백이 분명하게 나뉘는 일이 대체 몇이나 있던가? 이해 관계 하나도 없이 순수한 발언이란 게 대체 있기는 한 건가?

때로는 억울한 나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할 만큼 냉정해져야 한다. 언제나 완벽한 사람과 견해는 없음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해져야 한다. 때로 그렇게 냉정해져서 물러서는 공간과 여백이 있어야 '다른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너무 잔인한 현실이지만, 나의 억울함을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하지 못한다면, 나를 억울하게 한 현실은 그 부분만을 물어 뜯어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니 억울함이 나를 잠식해버리지 않게 될 만큼만 냉정해지자. 길벗들이 함께 싸우고 있음을 믿고 냉정해지자. 다수 중 하나로 인정받는 것 만큼, 소수도 억울함 없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는 과정이어야 함을 잊지 말자.

잠깐 들린 옆동네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거나, 술판에서 주먹다짐 한 번 하고 다시 안볼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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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2/21 02:32 2015/02/21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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