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느냐에 따라 여정의 성패가 갈립니다 ... 현대 사회의 속도와 즉각적인 결과에 대한 갈망은 우리가 가진 것들의 특징과 수준을 점검하고, 가는 방향이 지도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멈추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멈춤을 너무 쉽게 생각한 나머지 이를 간과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멈추지 않은 채 나아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내 길을 잃고 식량도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 이블린 언더힐과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집> '재의 수요일' 20쪽에서.


---------------

2014년 3월 5일, 저녁 7시 반, 사순 첫날 재축복식.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

이틀 전에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공지했는데도 거의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재 축복식'을 진행하고 연대의 마음을 나눠 주었다. 짠하고도 고마운 시간.

어제 '사순 첫날, 재의 수요일'에 강정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진행된 개신교 기도회들. 오랫동안 고통받는 이들의 곁을 지키던 분들과 더불어, 새로운 교회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얘기하지만, 1974년에 전국 단위로 구성되어 활동해 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조직력과 동원력 그리고 상징성은, 통합적 복음과 선교를 말하는 개신교 진영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개신교는 '다양성 속의 연대' 그리고 '다 함께, 더 외진 언저리로 떠나는 결단'을 통해서만, 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면서도 의미 있는 통합적 복음과 선교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정을 비롯하여 어제 곳곳에서 진행된 개신교 기도회들은, 참으로 감사하고 의미 있는 걸음들이면서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 크다. 어제 "한 번에 한 사람 또는 한 문제만 품을 수 있다."라고 남긴 메모에는 그런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다시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고 있지만, 아직도 너무 적고 연약한 이들이 조금씩 자기 어깨와 품을 내어줘서 버티고 있는 '통합적 복음과 선교'를 말하는 일부 개신교 신자와 교회, 모임들.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고 '의미'다.

다만, 우리보다 더 힘차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많은 곳에는 최소한의 연락 단위만 남기고, 그분들이 자주 찾지 못하는 더 외진 언저리에서 다같이 모여, 더 큰 목소리로 끈질기게 싸워 '하나씩 승리하는 경험'을 쌓는 게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는 '느낌적 느낌과 상황 인식'이 든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 줌 밖에 안 되던 예수의 제자들. 당시 종교, 정치 권력의 입장에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이었던 그 여인들과 사람들로 구성된 '제자단'. 우리의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이루신 놀라운 일. 세상을 뒤집어 버린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한계조차 변혁시키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시작된 40일의 순례 여정.

그 사순절기를 걸어가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이 뭔지를 정확하게 재인식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첫째.

이 시대와 사회에게 익숙한 '크기와 위력'을 통한 '빠른 문제 해결'이 아닌, '하느님의 편들기'에 동참하여 '통합적 복음과 선교'를 이뤄가는 '다양성 속의 연대'의 길을 찾는 것이 둘째.

그 과정에서 사회 뿐 아니라, 교회 내 여성의 지위,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차별하는 문제, 나이를 포함한 여러 사회, 문화적 조건을 기준으로 한 차별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기 변혁'의 과감한 길을 걷는 것이 셋째다.

이것만이 '크고 위대한 단일 교회, 천주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는 길이다. 주의 복음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말하며 사는 진보가 되고 '하느님의 편들기'에 더 가까이 동참할 수 있는 길이다.

* 덧붙임. 천주교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내외의 교파나 이웃 종교를 '경쟁 상대'로 봐야 한다는 일차원적 글로 읽으시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신 '각자의 독특함'으로 '보편적인 복음'을 구현하기 위한 '역할 분담'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4/03/06 02:16 2014/03/06 02:16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369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706 : 707 : 708 : 709 : 710 : 711 : 712 : 713 : 714 : ... 999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331152
Today:
333
Yesterday:
236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