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지금 어디에 있니?

웃고 있거나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라고 해도 그 안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을 수 있다.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거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최근 몇 가지 일들을 지켜보며 '사제'로서 움직이는 마음을 붙드느라 쉽지 않다. 내가 형이라 부르던, 이제는 이 동네를 떠난 분이 언젠가 술 한 잔 기울이며 내뱉은 말이 마음 한켠을 맴돈다.

"내가 사제라면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거기로 뛰어갈거야. 그래서 돗자리 깔고 며칠 낮밤이라도 지키고 앉아 있을거야 ... 훈아, 사제가 뭔데? 우리는 상징을 사는 사람이라며? 그렇다면 있어야 할 곳에 가야 하잖아. 훈아, 넌 지금 어디에 있니?"

광화문.. 재능.. 아주 위급한 일이 아닌 이상, 일상을 크게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데.. 위급한 일이 반복되는 현장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훈아.. 자캐오.. 넌 지금 어디에 있니? 왜 '사제'의 부르심에 응답했니?'

누군가 이런 자문을 하며 힘들어하는 나를 달래며(?)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성공회 사제는 천주교 사제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산다고. 천주교 정의사제구현단 신부님들과 비교하며 힘들어하지 말라고. 개신교 담임 목사님들처럼 '내 교회'를 섬기는 게 아니라고. 네가 하겠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당시에는 꽤나 설득력있는 말이라, 술 한 잔 기울이며 그저 묵묵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광화문에.. 재능에.. 하루 이틀이라도 묵묵히 곁을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성공회 신부가 없는 현실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과 기도를 하게 된다.

동료 선후배 신부님들 탓하거나 욕하는 게 아니다. 나만 해도 당장 내일 오전부터 2학기 출석부와 채플 수업 준비, 그리고 10월에 있을 행사 준비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동네에서는 몇 명이 하는 일을, 우리는 한 명의 사목자가 감당해야 하는 게 한둘이 아니다.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끙끙거리면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동료 선후배들의 삶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 묻게 된다.

'훈아.. 자캐오.. 넌 지금 어디에 있니? 왜 '사제'의 부르심에 응답했니?'

결국 이런 넋두리 글만 남기고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일터로 갈거다. 교목 행정실에 앉아, 다음 학기 채플 강의 준비와 행정 업무, 그리고 행사 준비를 할거다.

생명과 일상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만 되는 이 시대와 희생자들 앞에서, 그 곁이라도 묵묵히 지키고 있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사목자라 불리는 또 한 사람이라..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주절주절 주정이나 할 뿐이다.

그냥 혼자 되뇌이듯 기도하게 된다. "제발.. 살아 주세요.. 제발.. 차가운 유치장에서도 몸 상하지 마세요.."

광화문.. 재능.. 기도만 하고 있는 게 부끄러운 사람을 어디다가 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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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8/20 01:53 2014/08/20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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