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

하느님이 우리 생각이나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그 하느님의 다양성은 우리의 편협함에 갇히는 분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그 어떤 교회나 그리스도인도, 이토록 크고 넓고 다양하게 고백되고 만나게 되는 하느님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신앙 고백을 통해 배우고 자라며 서로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무엇보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은 우리를 노예화하여 공포로 통제하거나, 우리를 단죄의 불안으로 다스리시는 게 아닌, 우리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로마 8:15; 요한 3:17).

'우리들의 하느님'은 오늘 1독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정서와 고백에 갇힌 하느님이 아니라 역사와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이다.

'역사와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고백은, '우리들의 하느님'이 그저 개개인이 경험한 하느님을 전부 모아놓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와 우리들의 경험과 삶 속에서 우리와 함께 '거짓된 것들'과 투쟁하는 분이라는 고백이다.

그 거짓된 것들은 우리를 "육체의 악한 행실, 노예로 만들어 공포로 몰아넣는 그것, 우리를 단죄의 불안으로 이끄는 그것"이다.

스랍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라고 외치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육체의 악한 행실, 노예로 만들어 공포로 몰아넣는 그것, 우리를 단죄의 불안을 이끄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2015년을 사는 우리에게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라는 스랍들의 외침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품어주신다, 품어주신다, 품어주신다. 악한 행실에 저항하고 공포와 싸우며 단죄받을까 불안한 우리를 편드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비, 그 신앙 고백. 이것은 옛 신앙의 고백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를 통해 다시 고백되어져야 한다.

더불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스리시는 성부 하느님, 지금 이순간 우리와 동행하는 성령 하느님, 다시 오실 성자 하느님. 이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고백은, 역사와 삶, 우리의 시공간 모두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에 대한 고백이어야 한다.

* 2015년 5월 31일, 성삼위일체주일.

* 1독서, 이사 6:1-9 / 2독서, 로마 8:12-17 / 복음, 요한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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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5/31 23:28 2015/05/3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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