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마주하기

달동네는 달이 눈 앞에 보일 정도이거나, 달이 걸리는 산꼭대기라 하늘이 맞닿는 동네란 얘길 들려주던 동네 할머니가 계셨다. 같은 골목길에 살던 그분은 "우리 동네는 그 달동네 아래 산동네"라 말하곤 하셨다.

그런 산 중턱 동네이기에, 이래저래 개발되고 이젠 바로 아래까지 경전철역 공사 중인 동네인데도, 집에 오려면 항상 마을버스나 노선이 하나 뿐인 간선버스를 타고 들어와야만 한다.

그런 곳에서 살다 보니, 오늘처럼 늦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이면, 꼭 빼먹지 않고 하게 되는 의식이 있다. 그건 '하늘 마주하기'.

별 건 아니고, 자정이 넘으면 다니는 차도 거의 없는 길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 내려올 때에, 오늘 하늘은 어떤 모습인지를 살피는 거다.

대부분 까만 하늘에 하얗게 반짝이는 게 박혀 있는데, 오늘처럼 하얀 구름이 몽글몽글 떠있는 밤하늘을 마주하게 되는 날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따스함과 위로를 얻곤 한다.

마치 오늘, 아니 이제는 어제가 되어버린 나의 하루를 감싸 안아 주는 느낌이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미아에서 온수에 있는 학교로 출근, 행정 업무, 채플 강의 준비, 잠깐 쉬는 시간에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평화의 인간 띠 잇기" 캠페인 네트워크 구성을 위해서 제안서와 연락 돌리고, 헐레벌떡 부제/사제 서품식에 참여하기 위해 시청 주교좌로 달려가 서품식 참여.

다시 구로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서 겸사겸사 저녁까지 해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은 일부러 버스를 몇 번 갈아타면서도 하늘하고 눈 한 번 마주치려고 애쓰다가, 거리와 현장에서 만나는 기독 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네트워크 준비를 위한 회의록 정리하다가.. 졸다가.. 그렇게 자정을 훌쩍 넘겨 집에 도착.

이런 내게 퇴근길에 잊지 않는 '하늘 마주하기'는 큰 힘이 되곤 한다. 열심히 일하고 뛰어다닌 하루일수록,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는 하늘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뛴 것 같지만, 늘 나를 지켜봐 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퇴근길 전에도 자주 '하늘 마주하기'를 한 날은 덜 지치는 것 같다. 그저 기분 탓일지라도, 나의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그런 하루가 아니라, 하늘이 지켜봐주고 때론 오늘처럼 따스히 안아주는 하루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 밤. 반복되는 하루에 지친 내 길벗들이 있다면, '하늘 마주하기'를 권해 본다. 퇴근길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자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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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5/28 01:25 2015/05/2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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