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그런 날이 있다.

짱돌을 들어야 하는데 책을 들고 있고, 책을 들어야 하는데 짱돌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날.

늦은 오후, 교목실 선배 신부님께 양해를 구하고 요청받은 회의로 향했다.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협동 총무 자격으로 '민주쟁취 기독교행동' 집행위원 사전 모임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 모임 내내 많은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저 몇몇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거에 위안(?) 삼은 시간.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동료 선후배 신부님들이 있는 시청으로 향하지 않고, 격주로 진행되는 '마을 연구 모임 세미나'로 향했다. 토론이 진행될수록,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이론'과 '여럿이 함께 서로의 상황이나 한계를 맞춰 가야 하는 현장'의 '엮음과 이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집에 가면 내일 오전에 있을 캠프 오리엔테이션 준비 마무리하고, 한두 가지 세미나 책 읽기 계획, 그리고 교회에 대한 논의를 정리해야 한다는 알람이 연거푸 뜬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반대 방향인 광화문 광장에서는 생때같은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온전한 사실 규명과 대책 마련'을 향해 오롯하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짱돌을 들고 거리에 서야 하는데 책을 들고 있고, 책을 들어야 하는데 짱돌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날이 있다.

그저 간절히 바라는 건, 지금 이 걸음걸음이 '어쩔 수 없었노라'는 핑계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이 선택과 걸음이 짱돌과 책을 엮고 잇는 올바른 과정이기를 바랄 뿐이다.

때론 앞에서 때로는 뒤에서. 때로는 기동전으로 때론 진지전으로. 싸움은 그렇게 진행되고, 그 균열과 탈주의 빈 틈으로 하느님 나라를 살게 된다. 나는 우리 가운데 서서 내 몫의 싸움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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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7/26 02:56 2014/07/26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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