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 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태 6:24-25, 31-34)


---------------

성서는 해석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그 해석을 두고 끊임 없이 싸웠다. 나자렛 예수도 그 해석을 가지고 당시 종교, 정치 권력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후 나자렛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며 따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도, 그 해석으로 인해 죽고 쫓겨나면서도 싸우길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해석이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해석'은 없다. 어떤 해석이든 항상 '일정한 맥락'에 놓여 있다. 그 '맥락'이라는 게, 결국 '어느 편에 서느냐'와 같다. 우리가 상상하는 '중립적인 심판' 같은 해석은 거의 없다.

교회는 성서를 해석했다. 또한 '해석된 성서'에 의해 다시 해석되는 과정을 겪으며 교회가 되어 갔다.  그리고 그 해석들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전수했다. 교회가 성서를 해석하고 기억하며 증언하고 전수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안팎에서 끊임 없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요구받았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신자는 군인이 될 수 없었고, 군인이었던 이들이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칼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하느님의 편'에 서든지 '맘몬의 편'에 서든지 둘 중 하나를 요구한다고 믿고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정치, 종교적인 권력과 깊은 연관이 있던 군인이란 직업은, 신자가 '하느님의 편'에 서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했었다.

그럼에도 야훼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 해석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 그 해석과 기억, 증언 그리고 전수가 '하느님의 편'인지 '맘몬의 편'인지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가 '먹고 마시며 입는 것을 포함한 모든 일상'을 걸고 '하느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에 섰다. 그들의 일상과 삶을 함께 책임졌다. 그 일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들의 가진 것, 즉 하느님의 것을 아낌 없이 나눴다. 그들은 그렇게 종말을 살아갔다.


---------------

2014년.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회들. 쌓고 지키느라고 바쁘다. 교회가 맛 본 권력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하느님의 편에 서는 걸 외면한다. 선택이 아닌 타협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선포한다. 상대를 압도하는 돈과 숫자 그리고 위세로 겁박하여, 교회가 가진 것을 지키는데 온 힘을 다한다. 하느님의 편에 선 사람들의 위태한 삶을 책임지기 위해 아낌 없이 나누는 일은, 교회사 책에나 기록된 '옛 미담'이 된지 오래다.

이 시대, 여러 소수자들과 함께 하겠다고, 더 좁은 길을 걷겠다고 길을 나선 교회들이 있다. 잊혀왔던 성서의 해석, 그 기억과 증언 그리고 전수된 이야기들을 다시 복원하여 재구성하려고 몸부림친다.

해석, 그 중에서도 '어떤 해석', 그 해석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전수하는 것이 '하느님의 편'에 서는 것인지 '맘몬의 편'에 서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임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교회들이 있다. 이들은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 내시고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1고린 4:5)라는 성서의 증언을 굳게 믿으며 걸어간다.

'하느님의 편'에 섰던 수많은 사람들, 이 시대의 종교, 정치 권력에 의해 위협받는 그들의 삶을 함께 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 그 하느님의 것들을 나누려는 교회들이 있다.

성서는 해석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 나자렛 예수님,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고백하며 믿고 따른 제자들과 첫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하느님의 편'에 서고자 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이들은 시대의 종교, 정치 권력에 의해 '보잘 것 없는 자'라고 취급받는 이들, 그 '소수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 '하느님의 편'에 서는 것이라 믿었다.

2014년 3월 2일. 길찾는교회에 모인 우리. 우리도 그렇게 성서를 '해석'하고 기억하며 증언하고 전수하는 것이, '음식보다 목숨을, 옷보다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자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서는 바보가, 하느님에게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간다.

이 깊은 밤. 하느님의 편에 서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여.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


2014년 3월 2일, 연중 8주일, 오후 4시, 성공회 서울 주교좌교회 어린이 예배실.

* 1독서, 이사 49:8-16 / 2독서, 1고린 3:18-4:5 / 복음, 마태 6:22-34

* 본기도

주 하느님,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로 하여금 세상 근심과 걱정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4/03/03 01:13 2014/03/03 01:13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364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619 : 620 : 621 : 622 : 623 : 624 : 625 : 626 : 627 : ... 908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Site Stats

Total hits:
303294
Today:
48
Yesterday:
85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