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는 두려움과 갈등 그리고 낙담 속에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와 ‘평화’를 선언하신다.

그런데 이 평화는 오늘날 우리가 쉽게 말하는 그런 평화가 아니다.

교부들이 증언하듯이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에 의해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가 죽임당하시고, 그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갈릴래아에서 만나자는 예수님의 말씀은 기억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그들끼리도 자신들의 내일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심각한 갈등 속으로 빠져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자신들의 꿈과 이상이 눈 앞에서 박살난 걸 보며 낙담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가는 두려움과 갈등 그리고 낙담..

그런 가운데 상처를 지닌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선언된 것이다. 제자들은 기뻐하며 환호했다! 비겁했던 자신들과는 달랐던 여인들. 무모하다 여겨질 정도로 절박하고 순수했던,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 그 여인들이 전해줬지만 믿지 않았던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저 신비롭기만 한 환영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증거인 상처를 지닌 몸 그대로 예수님의 실체가 부활한 것이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던 종교, 정치 권력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 팽배했던 불신과 다른 의견들은 순식간에 정리될 것이다. 그리고 박살난 것처럼 보였던 제자들의 꿈과 이상은 더 크게 보상받을 것이다.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죽기 전에 보여주셨던 기적들을 보며 구름 같이 몰리던 이스라엘 민중들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번 기적은 그런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부활’아니던가!! 이 기적 한 방이면, 상처 입은 몸 그대로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앞장 세워 이스라엘 민중들 앞에서 행진 한 번만 하면 모든 걸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평화를 선언하신 건, 이제 이 세상을 어떻게 바로 잡을 지, 어떻게 평정할 지 알려주시겠단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냥반이 뭔가 이상하다. 평화를 선언한 뒤에 하시는 말씀이 이상하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아직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덜컥 평화를 선언하시더니, 이제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우리를 보내시겠단다. 우리들을 두려움과 갈등 그리고 낙담 속으로 밀어 넣은 수많은 문제들이, 저 문 바깥에서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들을 노리며 웅크리고 있는데 우리를 보내겠다고 하신다.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문제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무슨 평화가 있고 우리를 어디로 보내겠다는 말씀이신가.. 당신이 앞장서서 우리를 의심하고 등을 돌린 저 민중들과 적대적인 종교, 정치 지도자들 앞에서 행진 한 번 해주셔야 하는데, 당신은 어디에 가고 우리를 보내겠다는 것인가.

혼란스러운 제자들에게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그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시겠단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

그냥 당신이 단 한 번만 나서주시면 되는데.. 저 골고다 길을 거슬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행진 한 번만 해주시면 되는데.. 그럼 모든 게 수월하게 풀릴텐 데..

상처입은 몸 그대로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 그 증거 그대로 사람들 앞에 한 번만 나서시면 되는데.. 그렇게 하시면 되는데.. 왜.. 왜..

왜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은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고, 우리에게 가라고 하시는 건 지.. 왜.. 대체 왜..

아직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대체 우리에게 어떻게 평화가 있다는 건가.. 어떻게..

2015년 4월.. 점점 가라앉고 있는 교회들도 그대로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의 목소리를 국가 발전과 위축된 서민 경제의 장애물처럼 떠들어대는 저들도 그대로인데..

이 판도를 한 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힘 있는 건 하나도 안 쥐어 주시고, 왜 우리를 보낸다고 하시는가.. 두려움과 갈등 그리고 낙담에 쩌들어 있는 우리를.. 왜..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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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요한 20:21-23, 26)

* 2015년 4월 12일, 부활 2주일.

* 1독서: 사도 4:32-35 / 2독서: 1요한 1:1-2:2 / 복음: 요한 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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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4/13 01:12 2015/04/1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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