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좀 좋아진 줄 알았는데.. 이 넘의 못된 성격은 여전하다.. 아직도 수행이 부족.. 아니 아예 기초도 안 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한 하루였다.

한 주 전부터 세월호 참사 1주년, 시행령(안) 폐기 등을 위한 '기독인 연합 예배'를 알리고 참여를 준비했다. 성공회 쪽에서 순서를 도울 사목자가 필요하단 말에 선뜻 참여하기로 했다가, 상황이 바뀌어 내용이 바뀌어 괜찮다는 말에 그래도 신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내가 뭘 하느냐보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대책위 분들의 요청(?)도 있고 하니, 참여하는 각 교단의 사목자들은 예복을 입고 예배 후에 가장 앞에 서서 행진하자는 전달을 받고 부랴부랴 예복을 챙겨 학교에서 일찍 출발했다.

하지만 예배 내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답답한 마음 다스리다가, 결국 목사님들의 중복되는 발언이 계속되는 예배가 2시간을 넘기자 폭발해서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고난받는 현장과 함께 한다는, 성탄절이나 부활절 또는 이런 자리에서 진행되는 진보-보수 진영의 연합 예배 때마다 느끼는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하는 자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중언부언'에 가까운 종교 언어의 전시장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명하고 있는 '고통의 자리'에 대한 느낌들을 한 번은 보수적 신앙 언어로, 또 한 번은 진보적 신앙 언어로 반복하면서, 양쪽의 명망가들이 순서를 채운다는 인상이 너무 강하다. 더군다나 '전례'라는 형식을 갖춘다면서, 계응에서 인도자들 부분은 설교문에 가깝고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전례적 상징이나 행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통의 당사자와 이웃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와 색깔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전제로, 그 고통을 다른 층위에서 교차하여 서로를 느끼고 나아가 품게 하는 전례적 상징이나 행위, 또는 언어는 별로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 자리에 모인 신자들이 참여하는 건 거의 없다. 그저 교회 예배당 의자에 앉아서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는 신자들을 광장으로 옮겨 왔을 뿐이다.

전례의 집전자들은 마치 강강수월래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신자들의 적극적인 자리와 참여가 있어야 '제대로 된 전례'가 구성된다는 게 전례의 시작이자 끝인데, 그걸 느끼기가 어렵다. 그저 '같은 이야기를 다른 색깔과 표현의 신앙 언어로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만이 쌓일 뿐이다.

종종 '연합 예배'라는 이름으로 경험하던 그 불쾌한(?) 느낌이 반복되는 것 같아, 더 이상 참기 힘들어 벌떡 일어나 나와 버린 나.


그런데.. 그런 내 뒷통수를 내리친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못된 성격을 참지 못하고 2시간을 넘긴 예배를 뒤로 하고, 들고 갔던 예복 가방을 들고 일어선 나를 알아보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이들. 그들이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행진에 참여했다가 폭력적으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이런 제기랄..

나는 당췌 내가 따르는 이 넘의 '우리들의 하느님'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정을 붙였다가도 짜증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의문을 품게 하고, 이런 부끄러움을 직면하게 하시는가.

이 따위 밖에 안 되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가득한 저 윗동네 사람들이 모여 준비한 전례적인 연합 예배. 왜 그 예배가 가장 정치적이고 중층적 의미를 품을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으시는가. 이 무서운 상황을 뛰어넘는 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예배 되도록 이끌지 않으시는 건가.

그리고 그 예배가 어떠하든 간에, 그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들 앞에서 느껴지는 이 부끄러움.. 폭력적으로 끌려가는 전도사나 신학생들과, 스스로 현행범이 되어 경찰서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대표단 분들 앞에서 느껴지는 이 부끄러움은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세월호와 관련된 개신교 단체들이 함께 만든 이 연합 예배를 간단히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깊은 아쉬움과 절망에 가까운 안타까움이나 답답함 또한 어찌할 수 없다. 이 연합 예배를 섬긴 수많은 헌신자들의 손길 앞에서 느껴지는 미안함도 어찌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까지 '연합 예배'라는 이름으로 이런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중복적으로 하기'를 반복해야 하는 지에 대한 깊은 회의와 질문도 어찌할 수가 없다.

정말.. 이 따위 밖에 안 되는 내가 갖는 질문도 싫고, 부끄러움 앞에서 몸둘 바를 모르겠으며, 무엇보다 이 따위 상황을 가져온 이 따위 정부는 더 싫다. 제.기.랄.


* 덧붙임. '전례적 교회'라고 자주 언급되는 성공회의 일원인 나는, 충분한 사유와 성찰 그리고 숙고가 느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전례'라는 단어가 '순서지'에 붙어 있는 게 몹시 불편하다. 그런 사유와 성찰 그리고 숙고가 없으면, 참여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대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더 큰 문제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보다 이런 예배가 갖는 의미가 그런 불편함을 압도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회 신부인 신자의 한 사람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의미로만 채워지는 예배는 '전례적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분명 가장 정치적이고 중층적인 저항의 예배는 아니라는 것이다.

(늘 느끼지만.. 싸움의 한복판에서 쓰는 이런 글은 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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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4/15 02:52 2015/04/15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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