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보기

우리 때엔 국민학교라 불리던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무려 12년이다. 오직 '하나의 이야기'만 들어온 시간이다.

내겐 '좋은 국민 vs 나쁜 국민'만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전교조 선생님들과 고등학생 운동 선배들을 만나, 그제서야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겐 '올바른 국민/민족 vs 나쁜 국민/민족'이란 틀이 하나 더 생겼다.

대학생이 되고 많은 길벗들과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일이나 토론을 할 때마다 기본이 되는 틀이 있었다.

'빨갱이 vs 좋은 국민' 또는 '친일/친미파 vs 올바른 국민/민족'.

인권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며 여성주의 운동을 하는 분들을 만났다. 그 속에서 내 안의 폭력성을 더 깨닫게 됐다. 구조 뒤에 숨어 한꺼번에 다 바꿀 수 없다며, 폭력적 구조에 일조하는 내가 발가벗겨지는 과정을 겪었다.

국가 vs 개인, 중심부 vs 주변부, 권력을 가진 주류 담론과 구별 vs 불확정적인 젠더, 저항적 퀴어, 다양성의 공존.

이제 한두 가지 틀로 간단명료하게 살면서, '내 편 아니면 다 멸절되어야 할 적'이란 식으로 떠들어대던 용기는 사라졌다. 오히려 견디기 힘든 다름 속에서 공존의 길을 찾고, 동의하기 힘들어도 나와 다른 의견들을 이해해보려는 '물러서 기다리는 용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확신있게 말하고 항상 그렇게 작동한다면, 그만한 작동 구조나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으로.

나만 해도 12년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그 이후 10여 년은 그 반대의 이야기만을 ‘진리’로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변화를 살고자 하는 이들은, 그 ‘현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그만큼 기다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너도, 세상 그 누구도 단 한 번에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내가 쉽게 ‘규정’해 버릴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사순 2주일이고, 3.1절이다.

전국의 많은 성공회 교회들은 성찬예배 전후에 '풀어 쓴 기미 독립선언문'을 함께 읽을 거다. 내가 섬기는 길찾는교회에서도 그 '독립선언문'을 나눠줄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기’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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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3/01 20:45 2015/03/0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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