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더군다나 자기 고백적인 내용이 담긴 글이니, 긴 글 싫어하시는 분이나, 이 글에서도 말 못하는 깊은 내용을 모르면서 뭔가 평하고픈 분들은 그냥 넘어가 주시길 ^.^  )

작년 봄에 나온 노래라는데, 나는 최근에 알게 되어 반복적으로 듣고 있는 노래 하나가 있다.

선우정아님의 "뱁새". 결국 앨범 전체를 찾아 들었을 만큼 매력적인 가사와 목소리.

한 번쯤 만나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단 생각이 들 만큼 시사적이되 무겁지 않은, 말 그대로 '피식' 웃을 수 있는 가사. 그러나 냉소적으로 끝나지 않고, 뭔가 '다름'이 느껴지는 그런 노래.


---------------

이번 학기부터 갑작스레 성공회대 학부 채플 하나를 섬기는 일부터, 일에 대한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집에서 전쟁(?)을 치뤄야 한다. 지금도 충분히 바쁜데, 왜 더 바쁘려고 하느냐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냐고.

그럴 때마다 멍~해진다. 정말 그런가... 내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건가... 몇 주에 한 번 정도 좋아하는 커피집에 가서 몇 시간 앉아 있는 것도 감동적인 일이 되어 버린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몸부림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몇 가지 이유로 결혼 후에도 엄니 집에 얹혀 살고 있지만, 나름대로 대가를 치루고 있다. 뭐, 확실하게 계산한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이 강한 엄니 손에 자란 덕(?)이 크다. 물론, 그럼에도 엄니의 '배려'가 더 크긴 하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부모 덕이란 게 뭔지는 알지만, 그 '덕'이란 걸로 얻은 게 '더하기'보다는 '빼기'가 많았던 사람인지라, 더 나빠지지 않은 상황이란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별거한 집안에서 자라, 중딩 때에는 반장, 부반장을 하면서도 아버지가 있고 없고의 차별 대우가 뭔지를 확실하게 경험하며 자랐다. 아마도 그 덕에 '고등학생 운동'이란 걸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고딩 때 만난 첫 번째 담임인 전교조 쌤은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이란 소리를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를 평등하게 대해 줬으며, 심지어 더 챙겨주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신학을 하고 난 뒤, 청소년 사역에 그토록 집중했던 것 같다. 그 또래에 받는 상처와 작은 위로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는지 뼈 속 깊이 각인되어서.

아직도 '나이 많은 남자 권위자'는, 내게 불편한 존재이거나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낯설은 존재다. 꽤 많은 치유의 과정을 거쳤지만, 이 부분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쨌든, 동네에서도 꽤 잘 살던 집에서 자랐지만, 이후 아버지의 연이은 실패와 달라지는 환경 가운데 자란 나. 그렇기에 엄니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같은 존재가 되어, 학교든 교회든 '범생'으로 커야만 했던 나. 그 기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고딩 때부터, 엄니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심각한 정신적, 물리적 전쟁을 치뤄야 했던 나. 그 과정에서 아직까지도 동생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큰 상처를 줬던 나.

그런 나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그래요?"라는 질문은 참으로 뼈 아픈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인정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 있던 내게, '인정 받고 싶어 그러느냐'는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너무 난해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라면서 부모의 기대는 물론, 공동체에서 나를 발탁(?)해 준 분들의 기대와는 꽤나 다른 길을 선택하곤 했던 나는, '반골' 또는 '골칫거리'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내게 '인정'이란 단어는 '투항'이란 단어와 비슷한 개념이었고, 어느새 나는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하나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나의 삶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가장 마지막 보루'이거나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자라면서 가장 보기 싫거나 힘든 사람들은, 부모 덕에 '여러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개신교 전도사 시절, 지방회 면접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20-30분이나 면접이 길었던 이유가, 탈락의 위험에 놓였던 게 바로 '부모의 이혼 문제'였던 나로선.

학비나 생활비의 대부분을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나는, 이십대 초중반부터 교회 사역이든 학교 장학금이든 돈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방학 중에 여행을 간다는 건, 꽤나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학부 시절, 학교에 '예수전도단'의 지부를 개척하고 간사님을 모셔와 탑 리더로 섬기고 있던 내가, '선교 여행'때문에 몇몇 간사님들과 심각한 논쟁을 했던 적이 있다. 탑 리더라면 당연히 방학 때에 '선교 여행'을 다녀와야 하고, 재정 후원에 앞장 서야 한다는 간사님들. (지금도 그 분들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일할 수 있는데 왜 '여행'에 '후원'을 받아야 하느냐는 나. 가고픈 사람들이 학기 중에 알바라도 하고, 모자란 걸 후원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나. 아무리 내가 탑 리더라도 한 달이라도 사역을 그만 두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또 누군가의 후원을 받아 학교를 다니는 데에 동의할 수 없는데, 어떻게 '선교 여행'을 다녀오냐고 반문하던 나.


---------------

이제는 '인정'이라는 단어가 그리 저항감을 주지도, 그리 난해하지도, '인정 = 투항'이지도 않다. '다르다'는 것만 인정한다면, 부모 덕분에 뭔가 선택할 수 있는게 많거나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렵지도 않다. 세상에는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문제 풀이 과정, 그리고 하나의 답'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란 걸, 오랜 시간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리라.

참,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인정 욕구'야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능에 들어가는 것 같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게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내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인정받고 싶어요?"라고 물어보는 질문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나에겐 나의 삶이 있고, 누가 뭐래도 나는 나다.

* 덧붙임. 하느님 앞에서도 나는 나일 뿐이다. 누군가의 '인정'으로 달라질 필요가 없는, 하느님이 인정해 주는 나.


---------------

"뱁새" - 선우정아

새 옷을 차려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어색하기가 짝이 없구나
그토록 탐을 냈던 값비싼 외투인데
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이건 내게 어울리지가 않아

나도 쟤처럼 멋들어지게 차려 입으면
훨훨 날아갈 줄 알았어
점점 걔 같은 옷들로만 가득 찬 나의
인생을 보며 쓴웃음만 이걸 다 갖다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입고 나왔는데
쥐구멍 찾아 숨고 싶구나
그들에겐 꼭 맞는 어여쁜 외투인데
나한테만 어울리지 않아
나만 엄청 어울리지 않아

나도 쟤처럼 멋들어지게 차려 입으면
훨훨 날아갈 줄 알았어
점점 걔 같은 옷들로만 가득한 나의
인생을 보며 스쳐가는 생각들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나난나나 나도 좀 날아보자 나도 새다
같이 좀 날아가자 넌 너무 빨라

나도 쟤처럼 넓은 둥지에 태어났다면
쟤처럼 비싼 깃털이 남아돈다면
쟤처럼 힘센 날개를 달아본다면
훨훨 날아갈 줄 알았어
그러나 나는 나

새 옷을 차려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이건 내게 어울리지가 않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4/02/23 03:54 2014/02/23 03:54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355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691 : 692 : 693 : 694 : 695 : 696 : 697 : 698 : 699 : ... 971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313538
Today:
54
Yesterday:
34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