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시인으로

‘사목자’ 또는 ‘목회자’로 불리는 이들은 원래 이 땅의 ‘시인’으로 부름받은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사목자라 불리던 사람들이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법률가, 과학자, 철학자, CEO’ 등등 각 시대 정신을 대표하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거나 불려야 된다고 착각했다.

과대망상증.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한 조각일 뿐이고, 그 조각들이 ‘조각보 퀼트’처럼 엮여 살아가며 하느님나라를 이루고, 우리 모두는 그 하느님나라를 향한 순례 여정을 살아가는 ‘일상수행자들’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런 과대망상증과 싸워야 한다.

"알아야 한다." 그건 당연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대화나 토론이 가능하게 ‘아는 것’과 ‘그 분야의 전문가로 불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목자라면 그저 이 땅의 ‘시인’으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시인이되, 어느 정교회 신학자의 말처럼 ‘하느님나라의 상징으로 창조된 온 세상, 그것들의 궁극적인 원래 의미를 드러내는 축성과 축복’의 언어와 삶을 사는 시인.

그렇게 ‘송곳, 갈라진 틈, 징검다리’가 되어 하느님의 손발로 살아가는 투쟁하는 시인. 사목자는 그렇게만 살아갈 수 있어도 자신의 소명에 충분히(?) 응답하며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저 각자의 소명과 은사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의 몸된 조각들은 동등한 소명과 은사가 있다. 그 동등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독특한’ 소명과 은사가 나올 수 있다.

* 덧붙임: “책 읽는 목회자들: 독자생존(讀者生存)”에서 함께 읽을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를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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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11/26 23:31 2014/11/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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