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령 임재 사건.

편드시는 하느님을 증언하는 근거다. 그 구원과 해방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을 편드는 이유다. 길찾는교회 식구들을 그 삶으로, 그 길로 초대하는 동력이다.”

오순절은 유월절 다음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그리스어로 ‘펜테코스테’라 한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전수하는 날이었다. 성령 임재 사건이 있던 시대의 오순절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한다.

오순절 성령 임재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든 아니든 간에, 중요한 건 성서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를 통해 기억하고 증언하며 전수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있던 신실한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들. 그들은 그 척박한 시기에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삶의 우선 순위이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오순절 성령 임재 사건의 주요 목격자였다. 오순절 성령 임재 사건을 통해, 이들은 야훼의 율법이 완성되고 갱신되는 사건을 목격했다. 이렇게 그들의 마음과 삶에 누룩처럼 자리 잡아 자라나기 시작한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것은 결국 온 세상에 퍼진 그리스도교의 기초이자 시작이 되었다.

성령.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협조자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의 복음을 지속적으로 증언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일부 현대 그리스도교회가 오해 하듯이, 새로운 복음을 창조하는 분이 아니다. 오직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새로운 시대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디딤돌이자 통로다. 사도행전 29장, 그런 게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사도들을 세우는 권위, 이런 것도 아니다.

성령. 오직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수렴(收斂)하고, 그에 근거하여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통로다. 예수께서 삶으로 증언하신 ‘하느님의 편들기’, 그 편들기를 통한 ‘하느님의 뒤집기’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다. 그 ‘하느님의 뒤집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하는 우리들의 현실과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존재다.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통로이자 동력이다.

방언.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자들에게 방언은, 하느님의 도우심이 간절한 이들이 신음하며 통곡하는 외마디 소리다. 해방구 없는 삶과 사회를 비집고 뚫고 나오는 소리다. 그 맥락에서 다른 이들의 절박함과 만나게 하는 성령의 이어주심과 이끄심이다.

그러니 ‘진짜 방언’은 하느님의 도우심 따위는 별로 필요 없거나, 간절함이란 건 혹시나 마지막을 위해 남겨둔 부유한 엘리트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허락될 수 없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그런 소리이자 언어다. 삶의 '일부'에서만 하느님이 '필요한' 이들은 흉내내지만 얻을 수 없는, 삶의 '전부'에서 하느님을 '갈망'할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자 '언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성령 임재 사건은 무엇일까?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서와 초기 그리스도교는 증언한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의 길로 안내되고 연결된 이들. 그 신음과 진통을 겪는,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편드심’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땅이 이미 알고 있고 경험한 적도 있는, 이를 상징하며 가리키는 성령 임재 사건을 통해 이미 심판받은, 이 땅의 권력자들은 맛보지 못할 구원과 해방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다스리고 있다며 착각하는 이들은 얻지 못할 구원과 해방을 얻게 될 것이다.

그 구원의 갈망. 그 구원과 해방에 대한 갈망으로 '하느님의 편드심’에 동참하는 이들. 그 동참을 통해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이 따위 세상과 권력자들을 뒤집어버리는 하느님의 심판. 그 ‘하느님의 뒤집기’에 동참하는 이들이 바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성령의 사람들이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이들이다.

이런 성령의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은 항상 열려 있다. 그리고 성령은, 그런 구원과 해방의 갈망을 가진 모든 이들을 돕는다. 편드신다.

* 2015년 5월 24일, 성령강림주일.

* 1독서, 사도 2:1-12 / 2독서, 로마 8:22-27 / 복음, 요한 15:26-27, 1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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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5/25 00:07 2015/05/2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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