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투쟁. "NEED FOOD NOT 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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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 가져 가셔도 됩니다. 이 그림을 널리 널리 퍼트려 주십시오!!)


하나. 갱신된 전례적 그리스도인과 머물러 있는 근대적 그리스도인.

'갱신된 전례적 그리스도인'에게 성(聖)과 속(俗)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성스러움 안에 속됨이 있고, 속됨 안에 성스러움이 있다. 그래서 예배 가운데 성과 속이 공존하며, '신비'라는 말이 주는 질문과 힘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 ‘신비’라는 고리를 통해, 속으로 성을 깨우쳐가고 성으로 속을 터부시하지 않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숨결인 성령으로 이어져 있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 내가 누리는 이 기쁨이 누군가의 피흘림과 고통에 근거한 거라면, 할 수 있는 만큼 한 번 더 저항하려고 애쓴다. 고민과 갈등 없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며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머물러 있는 근대적 그리스도인'에게 성과 속은 명확하게 다르다. 성스러움은 주로 신앙적 영역에 속하거나, 속됨은 주로 일상적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이원론에 가까우며, 예배와 일상이 쉽게 나뉜다. 그 각자의 영역을 사는 ‘원칙’이 다를 때가 많으니, 그래서 신앙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많이 다르다. 또한 그 언어를 작동시키는 권위가 달라서, 신앙의 영역을 지배하는 ‘익숙한 목회자의 권위’가 과잉 작동할 때가 많다.

그래서 ‘갱신된 전례적 그리스도인들'은 성공회-복음주의자이자 주교인 N.T.라이트의 말처럼, 성찬을 ‘하늘과 땅이 맞닿는 자리’라고 믿고 참여한다. 그리고 세상의 고통을 하늘이신 주님의 고통으로 받아 들이고, 변화를 위해 힘 있게 뛰어 든다. 지금 당장 변화시킬 수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건 ‘신비’라는 고리를 통해 깨우쳐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물러 있는 근대적 그리스도인들'은 속된 세상의 고통보다 성스러운 신앙의 고통이 더 우선하거나 중요하다. 그래서 세상의 고통을 위해 열심히 싸우던 이들도 신앙의 고통이나 갈등이라는 문제가 생기면 주춤거린다. 그리고 물러서서 ‘익숙한 목회자의 권위’에 묻는다. 성서를 해석해달라고 한다.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대체 그런 태도에 ‘하느님의 신비’나 ‘주의 성령으로 인해 하나로 이어져 함께 느끼는 고통의 수수께기’같은 건 어디에 있을까.


둘. 2014년 브라질 FIFA컵.

2014년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브라질 월드컵. 룰라로 상징되던 브라질 좌파 정당. 그 노동당에 의해 유치되어 준비된 월드컵. 아니 FIFA컵. 현대 자본의 집합체이자 세련된 통치 기술이자 첨병인 스포츠 가운데 올림픽과 더불어 가장 위력적인 FIFA컵. 그 FIFA컴 아래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더 밀려나고 사회적 타살의 위기에 놓인 브라질 인민들.

나는 그 앞에서 좌파로 오해받던, 상대적으로 ‘합리적 보수 우파’인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대와의 데자뷰를 본다. 그 당시에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미명 아래에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인민들이 아파했고 죽어 갔는가. 또한 상대적으로 좌파니 민주개혁세력이니 하는 극우의 공격 앞에서 분열되면 안 된다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

그러나 나는 2014년 여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 주의 성령님으로 이어져 있기에, 세상의 피흘림과 고통은 주님의 피흘림과 고통이다. 그 앞에 좌파니 우파니 하는 ‘당위성’은 두 번째 문제다.

그러니 나는 2014년 FIFA 월드컵 시청 거부는 물론, 끊임 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걸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브라질 인민들과 연대의 행동을 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갱신된 전례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천 년부터 이어져온 그리스도교 정신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갱신하여 살아가는 그런 전례적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이다.  

또한 문창극 총리 후보를 옹호하는 일부 극보수 그리스도인들. 그들을 향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백 년 전 개혁 정신에 머물러 있는 근대적 그리스도인들인 당신들. 당신들이 머물러 지키려고 하는 그 ‘개혁 정신’은 대체 누구의 개혁 정신이냐고. 당신들이 왜곡해서 전하는 칼뱅이 만난 주님보다 더 귀한 거냐고. 칼뱅이 강해한 성서의 주인공이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보다 더 소중한 거냐고.

* 덧붙임. 이 그림은 브라질 인민의 싸움을 지지하는 운동가들이 무료로 널리 공유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널리 널리 전해서 '상징 투쟁'에 동참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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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6/18 12:57 2014/06/1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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