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9일, 성탄 1주일, 오후 4시.

< 故 범준 교우를 기억하고 연대하며 드리는 성찬 예배 >

1독서: 이사 63:7-9 / 2독서: 히브 2:10-18 / 복음: 마태 마태 2:13-23


어제는 눈물의 성찬 예배를 드렸습니다.


며칠 전,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범준님을 기억하며 한 빵과 잔을 나눴습니다.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인 그를 욕되게 한 이 땅의 교회로서 용서를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하늘 나라와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

힘겨운 완주를 마친 그는 이 땅에서 분명 '성도'(聖徒)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오직 하느님으로 인해 '성인'(聖人)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땅의 교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고 개혁된 교회들의 전통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이 이뤄지고,

이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성인들이 교통(交通)함으로 연대한다고 받아들이며,

모든 신자는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고 하느님의 품에서 완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찾는교회 성찬 예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오직 하느님의 품 안에서 완성된 성인의 삶을 살고 있을 그를 기억하고 연대하며 떡과 잔을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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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도의 교통 가운데 이뤄진 성찬의 전례 순서에서 우리는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함.. 분노.. 억울함.. 무기력함.. 그리고 다짐과 기억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를 알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 하고..

이름을 기억하며 울어주는 일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미안함'..


외로이 먼저 떠날 수 밖에 없던 그의 손을 더 일찍 굳세게 잡아 주지 못한 '미안함'..


그의 성적 정체성으로 죄인 취급하던 이 땅의 보수 교회와 사회에 대한 '분노'..


진정 '크신 하느님'의 품을 맛보고 사는 또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과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전통과 이야기는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한국 주류 교회와 사회에 대한 '억울함'..


그러나 너무 작고 연약하여.. 가진 것도..

함께 하는 신자들도 너무 적어서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들리지 않는다는 '무기력함'..


이제 겨우 모이기 시작한 작은 교회, 그 교회와 동행하는 젊은 사제이지만,


하느님이 원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으시는 차별과 배제

그리고 소외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


그래서 모든 차별과 배제, 소외와 싸우고 해결하지는 못해도,

그 속에서 상처 받으며 외로움과 죽음으로 내몰려지는 모든 이들의 손을 다 붙들지는 못해도,

우리와 함께 하거나 우리 곁에서 맴도는 '또 다른 그'를 잊어선 안 된다는 '기억'..


---------------

저는 우리의 울음 뒤에도,

교회와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 그 자리에 함께 모여,

그를 기억하고 연대함으로 한 빵과 잔을 나눈 이들은,


다 나누고 남은 빵 조각을

다시 작게 쪼개 함께 삼켜 우리의 살과 피가 되게 한 우리는,


좀 더 '하느님의 마음'을 느끼고 닮아가며

'하느님의 꿈'을 함께 꾸는 교회와 신자들이 되고자

우리 성령님께 의지하며 싸워가리라 믿습니다.


---------------

이 깊은 밤..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적었던 기도문을 다시 꺼내 기도하고 잠듭니다.


✠ 기도합시다. 우리 이 시간, 범준 교우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는 흠결없는 주님의 창조물이고,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 없이 용납된 사람이며, 주께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여 구원의 길로 이끈 신자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니, 그는 하느님께 붙들려 구원받은 천국 백성입니다. 또한 남은 가족과 벗들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깊은 상처를 위해 주께서 함께 하시니, 우리의 흐르는 눈물과 비통한 외침을 주께서 다 듣고 함께 하십니다.

주여, 이 시간 우리, 별세한 범준 교우의 영혼을 주께 맡기오니,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서 평안히 쉬게 하소서.

◉ 성부와 성령과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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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3/12/30 03:04 2013/12/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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