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목요일 Maundy 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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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수요일. 우리는 가리옷 사람 유다의 배반을 마주했다. 가까운 사람 가운데 하나. 가장 깊은 신뢰를 나눠 가진 사람. 그 깊은 친밀함과 신뢰가 뒤집어 질 때에 가장 상처가 깊은 배반만이 남는다. 그래서 악은 늘 빛의 가장 가까운 언저리에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들리는 순간,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보다 더 '확신'할 수 있는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에 속삭인다.

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더도 덜도 말고, 단 한 번만 믿어보라고. 딱 한 번만 내 방식대로 해보라고.

그리고 오늘 성.목요일. 우리는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그 발을 씻기며 몸에 각인시켜 주신 가르침을 반복하며 되새긴다. 제자됨,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사람인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 그것은 서로의 발을 씻기는 것이다.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늘상 노출되어, 아무리 노력하고 신경써도 쉽게 더러워지는 우리 각자의 연약한 부분. 바로 그 부분을 매일같이 서로 씻어주고 돌봐주는 것이 제자됨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팎에 웅크린 채 자리잡고 있는 악과 다시 한 번 대면한다. 씻어주고 닦아주기 위해선, 먼저 더러워진 발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더러워진 서로의 발을 쳐다본다. 그리고 내 발을 쳐다본다. '나도 이렇게 더러웠지... 언제든지 다시 또 이렇게 더러워지겠지.. 누군가 씻겨주지 않는다면 어느새...'

성.목요일. 서로의 발을 씻기는 행위에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담아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는 악과 공존하고 있는 존재임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 힘으로 악을 '멸절'하고픈 '유혹'에 사로잡히나, 결국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또 다른 악'이 되어간다는 것을. 악은 우리가 '멸절'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씻고 닦아내며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안팎에 웅크린 채 공존하고 있는 악을 '멸절'시키려는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실은 내가 또 다른 나를 멸절시키려는 것일 수 있음을. 오직 주님의 살과 피만이, 그 '본질적인 사랑의 뒤집기'만이 우리를 승리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밤, 엄습해오는 (사회적) 타살의 공포 속에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신다. 그는 가장 연약해 보이는 방법으로 가장 강한 자들에게 저항하셨다. 그렇게 수난과 죽음의 길로 천천히 나아가셨다. 그렇게 '본질적 뒤집기'를 시작하셨다. 서로의 발을 씻기는 과정을 먼저 행하심으로 제자들과, 그 제자들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그 가르침을 각인시키셨다.

내일 성.금요일. '하느님의 침묵'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기 전,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친히 씻기시고 나누신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 입 안 가득히 빵을 물고, 목젖이 꿀꺽 꿀꺽 넘어갈 정도로 포도주를 마신다. 나 혼자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픈 욕망이 가득하나, 오늘 따라 주님께서는 우리를 절제시키시며 돌려가며 나눠 먹게 하신다. 한 잔을 나눠 마시게 하신다. 그토록 강조하시던 하느님 나라가 마치 그와 같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시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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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4/17 23:17 2014/04/1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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