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 -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

* 2014년 7월 20일, 연중 16주일. 오후 2시~5시. 명동 가톨릭회관 7층.
* 생태 영성 신학자 성공회 매튜 폭스(Matthew Fox) 신부 공개 강연.

(강연 요지는 건너 뛰셔도 되지만, 질의 응답은 꼭 시간내서 한 번들 읽어 보소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매튜 폭스 신부님의 공개 강연. 천주교 신부로 시작하였으나, 급진적인 신학과 활동으로 천주교를 떠나 성공회로 건너온 '창조 영성'의 길잡이.

호주에 초청 받아 가는 길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제자의 주선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주최하는 <제12회 가톨릭에코포럼>의 발표자가 되었다는 설명. 네트워크의 부재, 기획력과 재정의 부족으로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친 우리 동네 현실에 잠깐 씁쓸했으나, 어쨌든 귀한 분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

한국에는 이미 80년대 후반에 소개되었고, 나 또한 스무 권이 넘는 그의 책 중에 한국에 번역된 주요 저서 몇 권과 몇 개의 아티클을 통해 그의 사상을 어느 정도 접하고 있어서, 약간 지루한 감은 피할 수 없었다  ಠ‿ಠ  

사실 오늘 강연의 많은 부분은 가장 최근인 2010년에 번역된 그의 책인 <새로운 종교개혁: 창조영성과 기독교의 변혁에 관한 95개조 반박문>의 요약에 가까웠다.

아무튼 긴 강연을 듣는 동안, 마음에 와닿은 몇 가지 이야기를 메모해 놓는다. 녹음을 한 게 아니라, 부정확하고 그의 책을 통해 접한 사전 지식과 묘하게 얽혀서 강연과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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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요지.

1. 영성으로 나아가는 4가지 길이 있다.
 (1) 긍정의 길, 부정의 길, 창조의 길, 변형(변혁)의 길
 (2) 긍정의 길 + 부정의 길 = 창조의 길.
 (3) 네 번째 길인 변형의 길은 창의성과 비판으로 이뤄짐.

2. 창조영성은 가장 오래된 영성 전통이다. 이는 히브리 전통의 지혜 영성인데, 히브리어에서 '지혜'는 여성형이다. 지혜 영성은 여성성이고, 자연의 영성이다.

3.우리는 매일매일 '창의적인 예술가'다. 창조영성은 일상 속에서 이뤄진다.

4. 우리는 혼돈과 질서의 경계, 그 가장자리에서 춤추며 살아가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5. 사회와 교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창조성의 희생을 거부해야 한다.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6. 최근 점점 더 늘어나는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는 무기력, 우울, 슬픔 등의 복합적인 문제로 인한 현상. 이는 아름다움을 강력히 체험할 때에 이를 극복할 수 있다.

7. 프란치스코 교황이 과학자이기도 한 유대인 랍비와 나눈 대화에서 배우려는 태도를 갖는 것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는다. 다른 종교는 물론 과학을 통해서도 배우려는 것이 보인다.

8. 나는 성공회 샌프란시스코 주교와 함께, 십자가의 길에 대비한 우주 그리스도의 길을 만들고 있다. 하나의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일주일 정도되는 '십자가의 길'만 가지고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9. 우주 그리스도의 길에는 요한의 복음서에서 나오는 "나는 ~이다"가 들어가고, 십자가의 길 내용이 들어가며, 마태오 25장의 '지극히 작은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내용도 들어간다.

10. 우주 미사(Cosmic Masses)는 변형의식과 기도의 만남. 원형적 형태를 되찾는 것. 이런 우주 미사는 환희의 춤(시작)과 변형의 춤(마무리, 파송), 그리고 애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21세기 예술 형태를 모두 담고 있다.

11. 토머스 베리 신부의 통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두운 밤'을 지날 때에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 오늘날 '인간'이라는 우리 '종'(種)의 앞날이 어둡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길은 결코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토머스 베리는 '역사상 가장 암흑기가 가장 창의적인 시기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이 그랬고, 3세기 중국이 그랬다. 이와 같은 암흑기에 사람들은 '지혜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게 했는데, 이는 인간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가 새로운 우주론과 인간을 만나게 하는 시점이다. 새로운 우주론은 '상호의존'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협력하도록 불러모을 것이다. 그런 우리들, 바로 공동체가 새로운 산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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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의응답.

1. 이런 가부장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희생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 자신의 분노에 잘 접속해봐야 한다고 본다.
- 토머스 아퀴나스는 말하길, "신뢰할만한 사람은 올바른 대상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시간만큼 화를 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 안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올바르고 적절한 방식으로 비폭력적으로 표출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미켈란젤로의 벽화 이야기를 예로 이야기함.)
- 나를 '희생자'라고 한 게 누군지에 대해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생자(피해자)가 되라고 말하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때로는 내면화된 억압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런 의식도 필요하다.

2. 역사적 예수와 우주적 그리스도가 어떻게 만나는가?
-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 역사적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싯타르타. 불교에서는 그의 가르침을 다시 사는 이들에 의해, 부처는 다시 살아가고 환생한다고 한다.
- 역사적 예수는 죽으셨다. 이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제자들 가운데 깨우쳐준 '지혜'. 이는 우리를 통해 계속된다.
-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성과 불성을 살아내야 한다.

3. 지속가능성은 인간 중심 개념처럼 느껴진다. 이를 넘어설 수 있으려면?
- 지속가능성은 그저 과학용어다. 그리고 이건 21세기에 정의를 말해주는 용어라고 본다. 이는 매 세대마다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성서에 빛이신 예수라는 말이 나온다. 빛은 입자이며 파동이다. 예수처럼 우리도 입자이며 파동이다. 이는 만물에게 해당한다.

4. 생태영성은 근본주의 기독교에게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생태영성으로 이끌 수(회심) 있을까?
- 종교의 근본주의화는 최근에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부 개신교 근본주의 뿐 아니라, 현재 교황이 나오기 전 34년 간 로마 가톨릭도 마찬가지였다.  
- 이는 인간이 위기를 만날 때 나타나는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본다. 두려움으로부터 오는 반응이다.
- 이 반대는 사랑이고 신뢰다. 기독교에서 믿음이란 교리 목록이 아니다. 신뢰를 뜻한다.
- 이런 맥락에서 이는 신앙적 질문이다. "그분들이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할 것인가?"
- 그러나 나는 우리 모두가 그런 '소명'을 받았다고 보지 않는다. 성서에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루가 9:60)라는 말씀이 나온다.
- 그러므로 근본주의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특별한 소명과 카리스마를 가진 이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 나아가는데 부름 받았다.
- <예언자>의 저자이자 '예언자 신학'의 대가인 아브라함 혜셀은, 마틴 루터 킹 Jr. 목사와의 연대와 동역으로 유대인 공동체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가뜩이나 반유대주의 정서에 어렵던 유대인들의 사정이 그런 문제에 연루되면서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비난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비난에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진을 계속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다시 한 번) 근본주의자와의 싸움으로 부름 받은 사람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어떤 식으로든 대상화하지 말며, 그들이 만든 왜곡된 기독교의 틀 안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5. 저는 동성애자이며 성공회 신자다. 아까 신부님이 한 공동체를 소개하며 게이 피플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청중이 모두 웃었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은 게이는 어디든, 바로 당신들의 곁에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 )
동성애를 반대한다거나, 동성애자는 존중하지만 동성애는 반대한단 입장의 신자들과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 그리고 성공회 신부이시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성공회 신자들과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웃음)

- 호모포비아 문제는 우리 시대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논쟁과 같은 문제라고 본다. 왜냐하면, 과학이 이미 답변하고 있다. 과학이 발견했다. 우리 인구 가운데 7-10%는 동성애자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로마나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도 진실이다.
- 제 생각에는 동성애자인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다. 첫 번째는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어머니인 자연이 일관성 있게 이성애자 부모들을 통해 동성애자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일까? 이는 자연은 '다양성'을 선호한다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자연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분명히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 몇 년 전에, 북미 선(원)주민 출신의 프란시스칸 수녀님이 나를 불러, "왜 이렇게 백인들이 동성애에 대해 난리를 피우지?"라고 질문했다. 북미 인디언들의 역사를 정말로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이(동성애자들) 우리의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들임을 알 것이다. 북미 인디언들은 동성애자를 두 영혼을 가진 이들이라 부른다. 남성적인 영과 여성적인 영을 함께 지닌 이들이라고 믿었다. 또한 아주 풍부한 영적인 통찰과 창조성을 가진 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백인들은 이렇게 난리냐고 물었다.
- 호모포비아는 자신의 영적인 에너지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퀴어함은 오히려 영적 통찰과 성찰이 뛰어날 수 있는 일이다.
-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의 교회 안에서 자라는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자 또래보다 더 빨리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더 빨리 내면적으로 강해지거나 독립적이거나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가기도 했다. 이때 이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와 억압으로 인해 다양한 중독을 경험하기도 한다.
- 제가 보는 성서는 하느님을 사랑이라고 가르치신다. '이성애자의 사랑'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사회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돕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셨다. 만약 복음서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들과 함께 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그리스도교 전통이든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성공회 교회에서는 이를 분명히 지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분열도 왔다.
- 논점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과학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호모포비아들은 '부자연스러움'을 말하나, 동성애자들에겐 이성애자들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가운데 8-10%는 동성애자인 것이다. 그들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분들의 사랑을 공경해야 하고, 그분들의 관계를 지지해야 하고, 그래서 '그 차이'를 기뻐해야 한다.
-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과학적으로 464종의 동성애를 하는 종들이 더 발견되었다. 동성애는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소수'는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게 아니라, 독특하고 특별한 것이다.
- 이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교회는, 400여년 전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했던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니, 그때처럼 계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조성을 잘못 이해하면 하느님도 잘못 이해하게 된다.
- 호모포비아적인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은, 한 마디로 '바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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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된 매튜 폭스 신부의 저서.

1. <원복 Original Blessing>

2. <우주 그리스도의 도래 The Coming of the Cosmic Christ>

3.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Passion for Creation: the Earth-honoring Spirituality of Meister Eckhart>

4. <영성: 자비의 힘 Spirituality Named Compassion>, 품절.

5. 루퍼트 셀드레이크 공저 <창조, 어둠, 그리고 영혼에 관한 대화>, 절판.

6. <새로운 종교개혁: 창조영성과 기독교의 변혁에 관한 95개조 반박문>, 품절.


# 매튜 폭스 신부님 사역에 대한 몇 가지 링크.

1. 매튜 폭스 신부가 주장하는 '새로운 종교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영문 블로그: http://www.matthewfox.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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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1 02:05 2014/07/2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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