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허락한다면 좀 더 함께 하고픈 분들과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이와 한참 동안 '관계'에 대한 통화를 했다. 그리고 대화를 정리한 메모.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공동체."

내가 당신을 항상 지지하고 동의할 수는 없듯이,

당신도 나를 언제나 변함없이 지지하고 동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이고 '공동체'인거다.

다만 '당신과 나 사이' 또는 '당신과 나를 벗어난 그 어디쯤'에서 만나,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한 번 더 함께 할 가능성이 있는거다.

이상을 꿈꾸되, 지금 작동되는 공동체는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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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GH의 시대에 진보나 개혁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아픔이 뭘까?

나는 '~에 반대한다'는 발언만으로 형성되는 '공감대와 진영'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반대만 하면 된다. 그나마 '왜 반대하는지'를 첨언하면 감사한 일이나, 대부분 그 이상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지금 'MB나 GH'만 아니면 된다.

(마찬가지로, '~주의'만 아니면 된다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에 반대한다'는 발언만으로 형성되는 '공감대' 앞에선, 그 너머에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는 건 사치처럼 여겨진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나에게도 커다란 위협이다. '상상 없는 현실'을 선택하는 건 '기존 질서에 포섭'되는 것 이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더라도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거다.

반대하는데 왜 반대하는지 이유라도 밝히고, 가능하면 '~반대한다'는 것 너머에 충분히 존재하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공유하려고 애쓴다.

이것이 내가 SNS를 통해, 적어도 하루에 한두 가지 메모는 꼭 남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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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사용하는 과정의 세 가지 메모."

첫째, '전능자적 관점'으로 글을 쓰거나 말하진 않는가 돌아보기.

이렇게 하는 순간, 더 이상 '대화의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 안다는 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나 또한 전능자적 관점으로 말하는 사람에겐 더 이상 아무 말도 않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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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말할 때에 매번 균형 있게 말하진 못해도, 완벽한 공동체가 아님을 잊지 말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내가 속한 '길찾는교회'도 그렇다.

그 지향이 건강한 편이라고 해서, 결코 모든 게 완벽한 교회는 아니다.

모든 차별에 반대하겠다는 선언이, '실제로 우리 교회는 어떤 차별도 없다'는 건 아니다. 이를 헷갈리지 말아라.

'선언'은 그 지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랑하려 한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그러니 길찾는 교회에 모든 게 다 갖춰져 있다거나,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작동하고 있을 거란 착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지금 모인 사람들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할 뿐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모든 걸 할 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래 함께 머물기 위해선, 나름대로의 '상호식별의 과정'이 필요한거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상상을 실현키 위해 달려가고 있는 곳이지, 상상을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는 곳은 아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언제나 다음 싸움이 있단 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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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싸움의 방식은 크게 '집단 이탈'과 '내부 진지 구축'이 있다.

'소수자 운동'을 비롯한 '갱신 운동'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 집단에서 주류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깃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유한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진 운동 그룹에게 '깃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적은 상황이라면, 변화시키고픈 집단 내에서 비슷한 뜻을 가진 이들이 모여 '집단 이탈'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깃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라면, 변화시키고픈 집단의 경계선에서 비슷한 이들이 모여 '진지 구축'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어느 방향이든, '획일화된 여론과 구조'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었다고 착각하는 주류를 흔들어 '균열'을 내고 '상상의 문'을 열어 나가는데 사용될 수 있다.

어느 방향이든, 굳어져 버린 현실 속에서 상상의 문'을 열기 위해, 더 '깊은 균열'이냐 '더 지속적인 균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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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2/07 02:24 2014/02/07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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