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대로의 사랑

사랑 그대로의 사랑.

종종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떤 분들이 먼저 길을 열어 주고, 나는 그 뒤에서 응원하며 걷고 싶다고.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아니 오래 전부터 그건 그저 희망 사항이었다.

언제나 '어쩔 수 없이' 앞장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는 그 일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곤 했다.

몇 가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고민하던 일들. 그러나 나와는 멀게 느껴지던 곳에서 벌어지던 일이라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일들.

어느새 나는 그 일들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다시 어떤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앞장서야 한다.

늘 말하지만, 나는 '비겁한 편'이다. 심지어 '게으른 편'이다.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걸 고민한다. 앞뒤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고 또 고려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할 때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왜 일까.. 내가 앞장서는 걸 좋아해서? 내가 잘나서? 뛰어난 편이라?

이런 질문을 하면서도 스스로 웃는다. 그런 건 나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다.

다만 나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 이 땅과 우리들의 삶에 충만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편이다. 그게 내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의 중요한 요청이라고 믿는다. 심각할 정도로 기울어진 이 사회에 우리들의 모습으로 오셔서, 몸소 보여주신 '말씀'이라고 믿는다.  

사랑 그대로의 사랑. 그 어떤 우리들의 편견에 의해 곡해되지 않고 표현되며 받아들여지는 사랑. 그 사랑 그대로의 사랑.

이 시대의 동료 그리스도인들. 특히나 보수적인 신앙고백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길벗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제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사랑 그대로의 사랑'으로 존중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규정'하기 전에, 우리들에게 '요청된 사랑'에 더 집중하고 충실했으면 좋겠다.

사랑을 규정하며 나누기 보단, 사랑하는 일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성서의 수많은 곳에서 비판하고 있는 '독점되고 분배되지 않은 부'를 가진 이들조차 '이웃'이라며 사랑하라는 님들이여. 그들이 그 '부'를 붙들고 있어도, '교회 재산'에 기여한다면 '축복받은 삶'이라고 증언하는 님들이여. 제.발.좀.

기울어진 사회에서 존재조차 쉽게 부정당하는 이들을 더 아프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 '부'를 독점하고 나누지 않은 이들에게 드리는 사랑과 관용(?)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이들'과 나누길 바란다. 이웃으로 존중하길 바란다.

님들이 인정하든 아니든, 그 사람들은 이미 하느님의 길벗이자 나와 우리들의 길벗이다. 이미 우리와 공존하며 공생하는 우리들의 이웃이다.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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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5/15 00:38 2015/05/1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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