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길찾는교회의 첫 번째 이별 앞에서.."

(복잡한 심경과 성찰이 얽힌 글이라 긴 편입니다.)

# 사목자들은.

사목자 또는 직무로서의 사제직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보편사제들인 신자들의 삶을 지지하고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사목자들은 사람들의 생로병사와 매우 가까워야 한다. 아니, '미묘한 관계'라고 하는 게 낫겠다.

그래서 공동체의 신자들이 겪는 생로병사의 한 켠에는 항상 사목자들이 함께 한다. 한 집안의 아이가 태어날 때에도, 그 아이들이 새로운 단계의 걸음을 뗄 때마다, 그 아이들이 자라 다양한 성적 정체성의 결합을 하는 결혼식에도, 이런저런 부침을 겪고 마지막 생의 숨을 내쉬고 떠날 때에도 함께 한다.

그렇게 슬플 때에도 기쁠 때에도 오늘 이 하루가 어제의 그 하루와 별 차이 없이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신자들의 생로병사와 사목자들은 늘 함께 한다. 그게 그들의 ‘직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등을 보여주며 앞서 갔던 선배 사목자들은 신자들 가운데 심각한 병과 싸우고 계신 분이 계시거나, 임종을 앞두고 있는 신자가 있을 때면 모든 걸음을 조심스러워 했다. 마음 한 켠을 그렇게 고통이나 죽음과 사투하는 가운데 있는 신자들에게 내어주고, 그렇게 일상을 조정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2014년 11월 14일, 금요일. 내가 세례성사를 집전한 두 번째 신자이자, 깊은 병 중에 세례받은 첫 번째 신자. 임종 전 조병예식을 위해 7시 경 병원에 들렸다가, 다시 밤차를 타고 1박 2일 일정의 교구의회로 내려가는 길.

그 버스 안에서 마주한 힘겨움은 내 예상을 뛰어 넘었다. 심란하고 답답한 마음. 흐르는 눈물.. 큰 바위 하나가 나를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을 겪고 도착한 교구의회 장소에서도 계속되는 일.교구의회 이틀 전에, 금요일에서 토요일 점심 때로 바뀌었다고 통보받은 10분 짜리 발표를 위해 재구성하던 프레젠테이션 파일. 그리고 한 통의 문자.

금요일 오후 11시 22분. 신자 분의 임종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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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싸움을 위해서라도.

전통적으로 사목자들은 신자들의 생로병사를 가까이 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선교 형태의 교회’를 위해 ‘이중직’ 또는 ‘자급이나 반자급' 사제로 살기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일과를 학교 채플린과 교목 행정 업무에 맞추고, 가끔 학교에 속한 대학교회 일을 돕고 교구 사제로서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을 감당하며, 주말에는 길찾는교회 식구들의 기본적인 요청에 맞추는 일. 그 외에도 생존을 준비하기 위한 내 공부나 공동 세미나 또는 외부 강의들.

늘 곁에서 지켜보면 '사목자의 당연한 삶'이 더 이상 당연할 수 없게 된 상황.. 이처럼 당연한 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는 삶이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아프게 넘어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임종 전 조병 예식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곁을 지키는 가족이자 길찾는교회 신자이기도 한 길벗에게 '임종 위탁 기도문'을 손에 쥐어주는 내내, 숨쉴 때마다 올라오는 울음을 참느라 쉽지 않았다. 내가 울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내 길벗의 슬픈 얼굴. 이 시간은 붙들지도 놓지도 못하고 그저 곁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라 쉽지 않을 거라는 위로 아닌 위로 밖에는 못 하던 나.

전통적인 형태의 교회에 속한 직무 사제들은, 신자들의 생로병사와 가깝다. 대부분 이중직으로 사는 새로운 선교형 교회의 사제는, 신자들의 일상과 가깝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난 2-3일을 겪으면서 간절해진 생각이 하나 있다. 모든 직무 사제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자들의 생로병사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선교적 형태의 교회에 속한 직무 사제라고 해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고민이 더 깊어진다. 신자들의 일상과 더 가까이 동행하는 일에만 집중하던 내 한계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안개 속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가는, 아니 안개 속에서 들리는 어떤 음성에 이끌려 들어가는 느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 2014년 교구의회를 겪으면서 나의 한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더 깊은 안개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기분.

그러나 내게는 길찾는교회 식구들이 있고, 새로운 선교적 형태의 교회들, 그리고 전통적 형태의 교회 가운데 꿈틀거리는 희망들이 있다. 또한 이 모두를 품으시는 주님이 계시다.

지금 내게는 그저 그 뿐이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족하다. 다음 싸움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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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11/17 14:43 2014/11/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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