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간혹 농담(?)으로 "길찾는교회의 기도 시간에 함께 기도하면 잘 이뤄져요!"라고 말하면 다들 신나게 웃곤 한다.

헌데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언젠가 썼던 글에서 사목자란 하느님께 '빌어 먹는 존재'라고 했듯이,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께 구하여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고 구했으니, 그 하느님이 주시는 걸 구한 것으로 믿고 사는 존재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이름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걸 믿고 구하며 사는데 이뤄지지 않을 게 있을까.

다만 우리의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대로' 이뤄진다. '성찬예배' 때 서로의 손을 붙들고 기도한 뒤에 드리는 인도자의 기도처럼, 하느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유익한대로' 이뤄진다.

"이뤄진다"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다. 그러니 내가 길찾는교회 식구들이 '곁에 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 시간에 드리는 기도가 잘 이뤄진다고 했을 때에 한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서로의 길고 긴 기다림과 아픔의 시간을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이뤄짐'을 경험한다.

정직하고도 간절하게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의 삶과 고통을 희미하게나마 알기에 맘 깊이 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한 마음으로 '가장 유익한대로' 이뤄주시기를 바라는 기도. 많은 경우에 그 긴 기다림과 아픔의 시간을 그저 함께 있어주는 기도. 길찾는교회 식구들의 기도다.

"전능하신 주님, 이 시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셨나이다. 간절히 기도하오니,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유익한대로 채워 주시며, 이 세상에서 당신의 진리를 깨닫고 후세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아멘."


* 덧붙임.

기도가 이뤄지지 않으면, 곧바로 '현재 가장 유익하지 않기 때문인가?'라고 반문할 길찾는교회 식구들은 없을 거다. 서로의 삶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희미하게나마 서로가 오랫 동안 짊어지고 있는 고통과 짐을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나부터도 신앙과 기도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내게 가장 유익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내게 가장 유익한 것'은 나 외에 누구도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걸 하느님께만 맡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하느님과 다툰다. 자주 욕하고 투정하며 버티거나 협박도 한다. 내게 가장 유익한대로 이뤄주시는 기도. 그래서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저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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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9/18 14:50 2014/09/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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