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 동안 전력질주하던 일을 조금 미루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연합 감사성찬례'는 그대로 진행하되, 전체적인 기조를 원래의 '큰 잔치'에서 '애도'로 진행하기로 했었죠.

헌데 참사가 처리되는 과정이나, 사람들의 한숨이나 분노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무게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학교 교목실로 문의하는 전화도 늘어가고.. 결국 이틀 간의 갑론을박 회의 끝에 행사를 연기하기로 실무진에서 합의한 후에 윗분들께 제안드렸죠. 그리고 어제 오후, 행사 4일 전에 전격 연기 결정.

저도 연기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의했지만, 정말 이를 악물고 열심히 준비하는 중이라 그랬는지 약간 유체이탈(?) 상태가 되더군요 @^@;;;;

그럼에도, 아무리 작은 교단일지라도 아무리 작은 학교일지라도, 한 조직이 무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 참 쉽지 않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생각과 말'이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아닌 다스린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이 땅의 지도자란 이들이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을 바꿔놓지 않는 한 달라지는 건 거의 없을 거란 걸 다시 한 번 되새긴 시간이기도 했죠. 논의 구조 안에 들어가는 한 사람의 '생각과 말'이 주는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체감했거든요.

가을이 되면 저는 다시 전력질주하게 되겠죠. 그러나 지금은 슬픔은 슬픔대로, 분노는 분노대로 가져갈 생각입니다. 다음주에는 성공회대 교목실을 중심으로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 그리고 생존자를 위한 기도처'를 만들 예정입니다. 성공회대 여러 학생 단위에서는 '촛불 기도회' 같은 준비들이 진행되는 걸로 알고요.

논의 구조 안에 들어가는 한 사람을 바꾸는 일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이 땅의 교회에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정치 사회는 더 말할 것도 없죠. 단 몇 줄로 짐작할 수 없는 수많은 토론과 이야기 그리고 고뇌가 담긴 공문 한 장.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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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23.

* 수 신: 전국교회 및 기관

* 제 목: 성소주일(성공회대 개교 100주년 기념 감사성찬례) 연기의 건

+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오는 27일(일)로 예정되었던 성공회대학교 개교 백주년 기념 연합감사성찬례는 국가 재난으로 선포된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기간임을 고려하여 금년 가을로 연기하기로 하였습니다.

불가피하게 행사를 연기하게 된 상황을 깊이 이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전국 교회와 기관에서도 국민들과 함께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을 추도하고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공회대학교 총 장 이정구(어거스틴)
대한성공회 의장 주교 김근상(바우로)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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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4/24 09:20 2014/04/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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