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혐오보다 강하다."
2014.3.1. 홍대 걷고 싶은 거리 / 호모포비아 반대 캠페인, 종교인 지지 발언 원고.

저는 신부입니다.

신부 중에서도 성공회 신부이고, 결혼한 신부입니다.

결혼한 신부!? 이 대목에서 저는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을 마주합니다. 신기하다는 반응과 놀라서 움찔하거나 의아하다는 반응.

그런데 저는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원숭이도 아니고, 여러분들을 해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신기할 것도, 움찔하거나 의아하실 필요 없습니다 ^.^ 그냥 제게 다가와 물어 보시면 친절하게 알려 드립니다. 물론 용기가 필요하겠죠. 그런데 용기 없이 이룰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요?

더 재밌는 건, 전세계에서 성공회 신자가 8천만명에서 1억명 정도 된다고 하거나, 역대 미국 대통령 마흔 몇 명 중에 열 한 명이 미국성공회 신자였다고 하면 달라지는 태도입니다. "아~ 제가 몰랐네요."

우리는 크거나 다수인 것에 약합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걸 겸손히 알아 보려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알던 틀 안에 가둬 두거나, 그마저도 귀찮으면 외면해 버립니다. 없는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모르는 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잘 모른다고 혐오하거나 혐오에 동조하는 태도를 갖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눈을 가린다고 해서 문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엄연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없애 버리거나 나처럼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 건 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건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성공회 신부인 제게, 여기 계신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천주교 신부가 되라거나 그냥 개신교 목사처럼 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제게도 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건 존중 받아야할 이야기입니다. 제가 믿는 기독교 전통 가운데 하느님은 이 땅의 모든 존재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주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잘 모르는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 하고 모르는 걸 물어볼 때에 친절히 설명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인정받아야 존재할 수 있거나, 여러분의 기준에 맞춰 바뀌어야할 존재는 아닙니다.

성소수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성애자가 다수이고 더 큰 이야기이니, LGBT 성소수자에게 이성애자들에게 인정받거나 이성애자 기준에 맞춰 바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살아야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을 부정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나로 살아갈 권리와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믿는 하느님과 기독교 전통의 가르침입니다.

세상은 상호존중과 연대를 통해 더 살만해집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가져올 뿐입니다. 사랑만이 사랑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 저와 함께 외쳐 봅시다.

혐오에는 냉정을, 사랑에는 열정을!

우리 더 사랑합시다. 모든 사랑을 존중합시다. 내 사랑이 소중하듯 타인의 사랑도 소중함을 인정합시다. 성소수자의 사랑도 나의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은 사랑이라서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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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3/02 03:19 2014/03/02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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