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밥 한 끼.

내가 직접 몇 시간을 불리고 정성껏 씻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난 잡곡밥. 그리고 다양한 색감과 식감을 가진 몇 가지 반찬들. 그렇게 이뤄진 한 끼의 밥상.

그 밥상 앞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주고 받으며, 아삭아삭 꼭꼭 씹어 꿀꺽하고 넘기는 밥 한 끼.

여유 있게 맛을 느낄 수 있는 밥 한 끼의 고마움.

이번 주는 그 고마움을 누릴 수 없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바쁜 한 주간이었다. 소박하지만 여유 있는 밥 한 끼를 먹은 게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빵이나 김밥으로 후딱 먹어 치운 게 대부분이었다. 그마저도 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더욱 더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며 맛을 느낄 수 있는 밥 한 끼가 간절하고 그리웠던 한 주였다. 그만큼 밥 한 끼의 고마움은 커져 갔다.

사람도 그렇고, 사랑도 그러하리라.

쌓여가는 일에 쫓기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한 잔, 차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여유와 고마움. 서로가 사랑 그대로의 사랑으로 받아 들인다면, 누군가에 의해 규정된 사랑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과 감사.

같은 하늘 아래 어떤 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다. 있는 모습 그대로 '독특할 수 있는 권리'로 존중받는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 당연하고 독특한 권리를 반납하거나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 게 살아가는 2015년 대한민국의 우리.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정이 넘어 간단한 배달 음식으로 고픈 배를 채우고 나니, 이래저래 밀려오는 생각들이 줄을 잇는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한 끼가 아니라, 좋아하는 이들과 여유 있게 맛을 느끼며 누릴 수 있는 밥 한 끼. 만남 한 번. 사랑 하나.

'우리들의 하느님'은 그 밥 한 끼, 만남 한 번, 사랑 하나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것들을 반납해야만 하거나 상상조차 못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로, 이 땅에 당신의 몸인 교회를 세우시고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셨다.

구룡마을에서 함께 기도하고 애찬예식을 나누고 온 밤. 빈그릇 앞에서, 고프고 간절해 보니 한 번 더 깨닫게 되는 '복된 소식'의 의미다. 그 '복음'의 증언은 설교단이나 제대를 넘어, 밥 한 끼, 만남 한 번, 사랑 하나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때 완성된다. 그러니 복음의 '증언자'인 우리는 그 밥 한 끼, 만남 한 번, 사랑 하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회와 삶을 위해 함께 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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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5/16 02:54 2015/05/16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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