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 사람도 그랬습니다"

집 없이 추운 이여
그 사람도 집이 없었습니다

노동에 지친 이여
그 사람도 괴로운 노동자였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이여
그 사람도 자기 땅에서 배척당했습니다

배신에 떠는 이여
그 사람도 마지막 날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쓰러져 우는 이여
그 사람도 영원한 현실 패배자였습니다

그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피투성이로 품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패배와 죽음까지를 끌어안고
마침내 무력한 사랑으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 사람도 그러했듯이
당신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지상의 작고 힘없는 사람 중의 하나인
당신 속에 그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p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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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일 강행군을 했더니 몸살과의 사랑(?)이 더 깊어진다. 그러니 잠이 오지 않는다.

마루 한켠에 있는 두꺼운 시집을 집어들곤 아무 곳이나 펼쳐 읽는다. 그렇게 뒤적이며 읽던 중, 내 지친 마음을 붙든 시 하나.

"그 사람도 그랬습니다"

또 하루의 일정이 있으니 이젠 억지로라도 잠들어야 하나, '그 사람' 생각에 잠시 잠긴다. 내 안에 살아 계신 그. 나를 '불가능할 것 같은, 또 다른 길'로 인도하는 그.


문득 어제 아침, 신대원 감사성찬례에서 나눴던 설교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식별 과정’이 되어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거울이 되어야 함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공동체로 모여 이 과정을 겪는 것은, 서로 비교하여 더 잘났거나 장점이 많은 사람이 ‘직무 사제’로 더 적합하단 걸 확인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공동체로 모여 살며 이 과정을 함께 하는 건, 너의 부족함이 나를 되돌아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너의 장점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함께 함을 통해, ‘상호 식별’이 왜 중요한 과정인지를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

정답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호 식별 과정’이 함께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힘들면 서로 다가서십시오. 무엇보다 서로에게 정직해 지십시오. 과장하거나 깍아내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요셉이나,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 심적으로 두려워떠는 대사제들이나 바리사이파 선생들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그는 내 삶의 식별이 되어준다. 나는 어떨까. 나는 우리 교회 식구들, 나의 선후배, 동료들과 '식별 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가. 혹시 '마주하기'를 생각지도 못했거나 회피했던 성서 인물들과 같지 않은가.

아니, 그 전에.. 나는 "이 지상의 작고 힘없는 사람 중의 하나"인가.

점점 복잡해진다. 이젠 정말 자야할 시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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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3/07 03:20 2015/03/0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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